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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300만원 날렸네"…도박에 빠진 중2, 이 사이트에 홀렸다 [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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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중2, 청소년 도박실태 보고서 ①]

 김기찬(15·가명)군은 중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친한 학교 선배의 권유로 온라인 도박에 발을 들였다. 그가 주로 즐긴 건 ‘바카라’다. 카드 2장을 받아 합이 9에 가까울수록 이기는 게임인데, 5초도 안 돼 게임이 끝나는 속도감 덕분에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김군은 “1시간 만에 200만원을 따기도 하고, 30분 만에 300만원을 잃기도 했다”고 말했다. 도박사이트 연결계좌는 비대면으로 만들 수 있는 카카오뱅크를 이용했다.

무료 불법 웹툰 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불법 도박 사이트를 접할 수 있다. 밀실 화면 갈무리.

무료 불법 웹툰 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불법 도박 사이트를 접할 수 있다. 밀실 화면 갈무리.

"신규 고객 잡아라"...청소년 노리는 도박 업계 

김군 같은 청소년들의 입문용 도박은 규칙이 단순한 게 특징이다. 룰렛에 나오는 대로 수익을 가져가는 랜덤 게임이나, 1등으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달팽이를 맞춰 승자를 정하는 ‘달팽이 레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잠재 고객인 청소년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실제로 상당수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는 ‘홀짝 게임’ 등 규칙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게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팀의 박중현 수사관은 “도박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시장이 포화되자 업자들이 청소년들을 신규 고객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청소년 마케팅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위험한 중2, 청소년 도박실태 보고서 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내 청소년들의 온라인 도박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치유원)에 따르면 2017~2021년 도박중독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청소년은 7063명이다. 치유원이 지난해 9~11월 케이스탯리서치에 위탁해 전국 초중고 학생 1만84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도박경험 관련 설문조사’에서는 재학 중인 청소년 25.8%가 “지난 3개월 동안 도박게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재학중인 청소년의 4.8%는 도박문제 위험군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확산세가 더 빨라졌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김시원(37) 배재고 심리상담사는 “코로나 이후 집에서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수업을 듣는 등, 온라인 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도박 사이트 접근성도 높아졌다”며 “청소년 도박 상담 건수가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있는데, 이는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생긴 착시 효과”고 말했다. 김성호 관악경찰서 SPO(학교전담경찰관)도 “코로나 이후로 대외 활동이 줄고 SNS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불법 도박은 SNS를 통해 퍼진다”고 지적했다. 정보영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중앙센터장은 “최근 현직에 계신 상담 선생님들의 말에 따르면 한반 학생 30명 중 10명은 온라인 도박을 경험하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불법 웹툰·비대면 계좌·SNS…IT 세상이 부추긴 청소년 도박

 비대면 거래의 일상화도 청소년 도박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이 카카오뱅크·토스뿐 아니라 기성 은행의 비대면 금융서비스를 이용해 계좌를 열 수 있게 되면서, 도박 사이트의 유혹에 흔들리기 더 쉬워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SNS 프로필에 계좌번호를 걸어두는 것도 최근 10대들 사이에선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박중현 수사관은 “카카오뱅크 계좌가 열리는 중학교 2학년 때가 청소년들이 불법 토토를 가장 많이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불법 웹툰 사이트 '뉴토끼'의 첫 화면을 장식하는 건 화려하게 번쩍이는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 배너들이다. 각종 불법 사이트들은 해외 VPN을 사용해 단속망을 피한다. 서로의 사이트를 홍보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청소년들이 웹툰을 즐겨 이용한다는 점을 이용해 뉴토끼 등 불법 웹툰 사이트를 도박 사이트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불법 웹툰 사이트 '뉴토끼'의 첫 화면을 장식하는 건 화려하게 번쩍이는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 배너들이다. 각종 불법 사이트들은 해외 VPN을 사용해 단속망을 피한다. 서로의 사이트를 홍보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청소년들이 웹툰을 즐겨 이용한다는 점을 이용해 뉴토끼 등 불법 웹툰 사이트를 도박 사이트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은 복잡한 규칙이 필요 없는 단순한 게임인 경우가 많다. 가장 빨리 달리는 달팽이를 맞추는 사람이 돈을 가져가는 '달팽이 레이싱' 게임 화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은 복잡한 규칙이 필요 없는 단순한 게임인 경우가 많다. 가장 빨리 달리는 달팽이를 맞추는 사람이 돈을 가져가는 '달팽이 레이싱' 게임 화면.

 도박 사이트 노출 경로는 다변화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불법 웹툰 사이트도 도박 홍보를 위한 주요 창구다. 불법 웹툰 사이트 ‘뉴토끼’의 첫 페이지를 클릭해 보면, 화면을 채우는 건 웹툰이 아니라 ‘첫충 15%, 매충 5%’(첫 충전시 15% 추가 충전, 매번 충전하면 5% 추가 충전) 문구가 번쩍이는 불법 도박 사이트 배너 광고다. 웹툰을 볼 때도 중요한 장면에는 도박 사이트 홈페이지가 덧대져 있다.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계 관계자는 “불법 도박 사이트들이 홍보 수단으로 애용하는 게 불법 웹툰과 성인물 사이트”라며 “불법 웹툰과 성인물 사이트, 그리고 불법 도박 홈페이지가 서로를 홍보하면서 상생하는 구조”고 말했다. 김시원 상담사는 “웹툰을 볼 정도의 나이가 되는 청소년이라면 불법 도박 사이트를 들어갈 수 있는 링크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전했다

이런 불법 사이트들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국내에선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영업하며 당국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 당국이 VPN 통로를 막으면 사이트 주소 끝자리 숫자만 바꿔 영업을 지속하는 식이다. ‘뉴토끼’는 지난해 12월 기준 183번째 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구글에서 ‘바카라’ ‘토토’ 등의 단어를 검색하면 나타나는 불법 도박 사이트들도 대부분 VPN을 통해 추적을 피하고 있다. 불법 도박 사이트 폐쇄 권한을 가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5년간 매년 4만건 이상의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를 폐쇄·차단해 왔다. 지난해 1~11월 방통심의위가 시정을 요구한 불법 도박 사이트도 5만157건에 이른다.

불법 도박 한 해 신고만 5만 건...내 아이는 안전할까?

 전문가들은 처벌받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아 음지에 있는 도박 중독 청소년들이 더 많다고 지적한다. 정보영 센터장은 “상담센터를 찾을 정도인 청소년들은 이미 금전적인 문제나 형사적인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예방 교육을 나가면 도박을 하는 학생들은 많은데 정작 학생들은 그게 도박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온라인 도박이 상당수 청소년에게 일상이 된 현실을 부모들이 인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성호 관악서 SPO는 “수사기관이 개입할 정도로 사태가 커진 후에야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온라인 도박을 인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 아주 놀란다”고 전했다. 김시원 상담사는 “부모님이 사주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고가의 아이템, 신발이나 가방을 가지고 있다면 의심해보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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