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뿌리' 벨라루스의 배신…우크라 코앞서, 러와 총부리 흔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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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러시아군이 벨라루스 미공개 장소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모습.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러시아군이 벨라루스 미공개 장소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모습.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군사적 밀착이 갈수록 강화되며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10월부터 벨라루스에 주둔하며 지상과 공중에서 다방면의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통해 남하하며 침공했던 지난해 2월 개전 상황을 기억하는 우크라이나로선 경계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과거 9세기 이 일대에서 세력을 떨친 키이우 루시(키예프 루스) 공국을 공통의 역사적 뿌리로 생각하고 20세기엔 소비에트연방에서 70년 넘게 우크라이나와 함께했던 벨라루스가 지금의 우크라이나에는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벨라루스 국방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오늘부터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연방지역군 연합사령부의 합동 참모 훈련이 시작된다”며 “훈련은 일주일 간 실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벨라루스와 러시아) 연합국 군사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군을 배치했다”고 덧붙였다.

벨라루스는 지난해 10월부터 러시아군의 자국 내 주둔을 허용하고 러시아군과 자국군의 연합훈련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벨라루스를 방문한 이후 이런 행보는 가속화하고 있다. 독일 dpa통신 등에 따르면 8000~1만명의 러시아군이 벨라루스에 주둔 중이며, 벨라루스군과 함께 시가전 상황을 가정한 군사훈련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달 16일부터는 공군 전술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훈련은 이달 1일까지 이어진다. 이외에도 양국 군대는 전술부대 상륙, 물자 운송, 부상자 후송 등도 함께 훈련하고 있다.

정부간 협력도 활발하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 장관은 지난달 19일 각각 벨라루스 국방·외무 장관과 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군사 협력을 논의했다.

지난해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벨라루스를 방문해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벨라루스를 방문해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로선 벨라루스와 인접한 북부 지역의 방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벨라루스 국경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까지 거리는 약 90㎞에 불과하다. 키이우 방위 책임자인 올렉산드르 파블류크 중장은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기 위해 북부 접경지역에 지뢰를 매설하는 등 ‘장벽’을 세워뒀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벨라루스 국경 지역에 대한 방어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로선 현재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부와 남부 외에도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북부에 상당한 병력을 배치해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합동훈련이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분산을 노리는 러시아군의 전략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서방 군사 전문가 그룹에선 러시아군이 지난해처럼 벨라루스를 통해 우크라이나 북부로 침공할 가능성은 당장은 크지 않다고 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전선에서 대공세를 펼칠 확률이 더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벨라루스 루트를 활용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고 분석한다. ISW는 “현재 벨라루스에 배치된 러시아군은 순환 훈련을 거쳐 우크라이나 동부로 재배치되는 중이고 올 봄에 (벨라루스에서) 우크라이나를 칠 지휘부의 움직임은 아직 포착되지 않았다”면서도 “올해 9월 이후 러시아의 군수 산업이 더 많은 준비를 갖추게 되면 벨라루스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러시아가 지상군을 통한 육상 침투는 하지 않더라도 벨라루스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미사일 공습을 벌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지난달 16일 성명에서 “러시아가 합동 훈련을 빙자해 벨라루스의 전투항공단을 강화함에 따라 벨라루스 영공으로부터의 미사일과 공습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전세를 일거에 뒤집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발사 장소로 자국을 피해 벨라루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벨라루스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중 국민투표를 통해 비핵국 지위를 포기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러시아군이 벨라루스 내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틀이 마련됐다. 대니얼 윌리엄스 전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은 홍콩 아시아타임스에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에서 핵무기를 발사해 러시아를 겨냥한 (서방의) 보복 공격을 피하려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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