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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예술톡

AI도 아는 미술관장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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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요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인공지능(AI) 연구 회사 ‘오픈AI(Open AI)’가 개발한 ‘챗GPT(ChatGPT)’라는 대화형 인공 지능이 화제다. 기존에는 검색 사이트에서 관련 단어를 넣고 필요한 정보를 찾았지만 챗GPT에선 문장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앞으로 전세계 많은 분야에서 쳇GPT가 끼칠 영향은 가히 폭발적일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얼마전 국내 한 미술전문기자가 기고한 글에 크게 공감하였다. K아트가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로 전문성이 결여된 미술관 운영을 지적한 내용이었다. 아직도 이런 문제가 거론되어야 하는 우리나라 미술계 실정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10년 전에 상당히 규모가 큰 지방의 한 미술관에서 학예사로 일했던 친구로부터 국공립 미술관 운영의 폐단을 전해 들었다. 여태껏 이런 낡은 관행이 남아 있다니 전 세계에서 문화 강국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는 대한민국 문화계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현재에도 전문성 부족한 공무원이 미술관장을 맡는다거나, 국공립 미술관이 정부 산하 행정기관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술 전문가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필자가 시험 삼아 챗GPT에 물어보았다.

기획·공감력이 중요한 미술관장
아직 인공지능이 떠맡을 수 없어
비전문가 등용되는 한국의 현실
K아트의 비상 자랑할 수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 풍경. ‘시간의 정원’ 설치작품이 보인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 풍경. ‘시간의 정원’ 설치작품이 보인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관은 어디인가?” 놀랍게도 챗GPT는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첫 번째로 꼽았다. 두 번째는 일본의 모리 미술관, 세 번째는 중국의 울렌스 미술관이라고 대답했다. 해당 정보가 100%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필자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이런 대답을 들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한국 현대미술계의 위상이 수직상승했다는 증거다. 실제로 최근 해외에서도 한국의 여러 미술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교류해 온 해외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다. “한국의 미술관장은 왜 그리 자주 바뀌는가?”이다.

그 파장은 깊고 넓다. 미술관장이 바뀌면 학예사들도 줄줄이 교체되고 2~3년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무산되는 경우도 많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을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만든 니콜사 세로타 관장은 무려 27년 동안 관장직을 유지하였고 세계 최고의 현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뉴욕 모마 미술관의 글렌 로리 관장은 1995년부터 현재까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미술사를 전공하고 현장에서 쌓아온 오랜 경험과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테이트와 모마라는 빼어난 미술관을 만들어내었다.

우리의 현실로 되돌아온다. 전문성이 전혀 없는 공무원이 미술관을 운영할 수 있다면 수백만~수천만 데이터로 무장한 인공지능도 미술관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챗GPT에게 물었다 “인공지능이 미술관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가?” 다음 같은 대답이 나왔다.

“네, 인공지능은 미술관장 역할을 해낼 수 있습니다. 미술관 운영이나 작품 데이터 분석, 소장품 관리 등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 관장을 대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기획에 관한 결정을 내리거나 미술관 재원을 마련하거나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역할입니다. 미술관장이 되려면 전문가적인 자질 외에 창의력·공감력, 그리고 리더십이 중요한데 이 모든 요소를 AI가 대체하기엔 아직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매우 똑똑하고 겸손한 이 대답에 감탄마저 나온다. 전시 기획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비전문가가 어떻게 기획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예술가들과 한 번도 교감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작가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전시를 열 수 있을까. 작가의 세계관에 교감하는 것부터 매우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미술관을 이끄는 리더의 필수 요건인 기획력과 공감력, 창의력은 하루아침에 습득할 수 없다. 이것은 미술 분야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자양분과 같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도 터득하기 어려운 사항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한국 미술계가 한 걸음 더 발전하려면 간섭받지 않고 자율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미술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미술관은 문화 생태계의 구심점이다. 미술관이 자유로워져야 전문가들도 존중을 받을 수 있다. 문화 마인드가 정치에 영향을 주어야지 정치 마인드가 문화를 다스리려 하면 안 된다.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