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차이나 분수대

열 손가락 지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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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성민 정치에디터

윤성민 정치에디터

국가인권위원회는 원격 얼굴인식 기술을 관계 법률이 마련되기 전까지 사용하지 말라고 지난달 정부에 권고했다. 법무부의 공항 출입국관리시스템이나 경찰청의 범죄 피의자 3차원 얼굴 인식 시스템 등에서 이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인권위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고 권고 이유를 설명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2020년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감시 기술을 거부했던 나라에서도 대량 감시 도구가 일상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에서도 일상화될 조짐을 보이는 국가 감시에 인권위가 제동을 걸었다.

인권위의 결정은 국가의 개인 생체정보 대량 수집·활용이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던진다. 권위주의 정부는 국민 통제의 한 수단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활용해왔다. 얼굴인식 기술이 가장 활발히 활용되는 나라는 중국이다. 한국도 오랜 역사가 있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8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좌우 엄지손가락 지문을 날인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그해 1월 북한 특수부대원 12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는 사건이 계기가 됐다. 1975년부터는 17세 이상 국민이라면 열 개 모든 손가락 지문 정보를 국가에 제공해야 한다.

열 손가락 지문 날인이 헌법상 자기정보 통제권 등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과 2015년 두 차례 판단을 내렸다. 모두 합헌이었다. “지문 수집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범죄 수사 등 공익목적에 비해 크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둘 다 헌법재판관 6대 3의 결론이었다.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행정의 편의성을 국민의 기본권보다 앞세운 발상”(2005년),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2015년)며 위헌 의견을 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다수의 공익보다 소수의 인권에 마음을 썼던 재판관들의 의견에 더 눈길이 간다.

인권 감수성이 예민해졌다. 인권위는 2019년 초등학생 지문인식 출입시스템에 대해서도 “아동의 기본권을 최소한으로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시대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모든 국민이 여전히 지문 정보를 제공해야 할까. 헌재가 십지(十指) 날인을 다시 판단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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