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경기 얼어붙자, 경력직 채용시장도 한겨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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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해 말 대형 전자회사를 그만둔 A(40대)씨는 요새 가끔 밤잠을 설친다. 퇴사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구직 인터뷰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사실 그는 재취업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재직 중 물류 고도화 작업을 주도했고, 이전 직장인 외국계 기업에선 전략 업무를 경험하는 등 경력이 나름 화려해서다. 레퍼런스(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회사에 몸담고 있을 때는 스카우트 제의를 종종 받았었는데, 최근엔 이렇다 할 오퍼(제안)가 없다”며 초조감을 드러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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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경력직 채용 시장이 급랭하고 있다. 잘나가는 정보기술(IT) 분야 개발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헤드헌팅 업체인 드래곤HR의 박용란 대표는 “올 1월 전체 의뢰 건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20~30% 선이고, 의뢰 기업 수도 절반 수준”이라며 “대기업은 물론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 같은 테크기업, 투자금 유치에 성공한 성장기업 모두 의뢰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같으면 서너 건의 인터뷰 기회를 잡았을 구직자도 최근엔 한 번도 힘들 정도”라며 “성장기업의 구인 의뢰는 씨가 말랐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경력직 이직 시장은 호황기에 가까웠다. 헤드헌팅 업체별로 매출이 전년보다 20% 가까이 늘었다. 굿커리어의 지난해 채용 의뢰 건수는 2100여 건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분위기가 반전했다. 무엇보다 경력직 채용을 주도했던 IT 기업과 외국계 기업이 채용을 급격히 꺼렸다. 업계에서는 올해 구직 의뢰가 지난해의 60% 선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업계에서는 불경기 우려에 더해 코로나19 기간 중 급격히 몸집을 불린 기업이 이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한다. 실제 IT 기업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인원을 크게 늘렸다. 네이버의 경우 2021년 6월 4235명이던 직원 수가 1년 만에 4885명으로 15.3%(650명) 늘었다. 같은 기간 카카오도 2961명에서 3603명으로 21.7% 증가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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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인원 증가가 반드시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학습 효과까지 더해졌다. 온라인 유통업체인 B사는 올해 최대한 채용을 보수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이 회사 직원 수는 700여 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900명 이상으로 조직을 키웠지만 당분간은 현재 인원을 유지할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금 직원 수는 200명가량 줄었지만 실적은 되레 나아졌다”며 “올해는 결원을 채우는 선에서만 사람을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용란 대표는 “그동안 ‘초봉 6000만원, 평균 1억원’을 기본으로 하던 개발자 채용 붐이 정점을 지났다”며 “곧 아파트 가격처럼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T·스타트업계로 흘러들어오는 투자액이 마르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소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벤처 투자액은 1조326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3.9%(1조381억원) 줄었다. 이영미 커리어케어 수석(부사장)은 “지난해엔 플랫폼 기업이 엄청난 규모로 인력을 뽑았다”며 “스타트업 경기가 얼어붙은 게 채용 시장을 경직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수요가 꾸준한 분야별 ‘S급(최우수) 인재’의 경우 지난해 대거 자리를 옮기면서 스톡옵션 등 계약 조건에 묶여있어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만 모든 경력직 시장이 얼어붙은 건 아니다. 기업 성과와 직결되는 영업 전문가 등의 채용은 비교적 활발하다. 또 삼성과 SK, 현대차 등 재계 5대 그룹 계열사와 바이오·배터리 등 특정 분야에서는 인력 수요가 꾸준하다. 지난해 대졸 신입·경력을 더해 1만명가량을 신규 선발한 삼성전자는 최근 기존 경력직 채용 기준을 ‘경력 4년 이상’에서 ‘2년 이상’으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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