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스 바흐(오른쪽) IOC 위원장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올림픽의 위선을 산 러시아 돈에서는 우크라이나의 피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죠, 바흐 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고문인 미하일로 포돌리아크가 소셜미디어에 토마스 바흐(독일·사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저격하며 남긴 글이다. 그는 “IOC는 전쟁과 살인, 파괴의 옹호자”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는 걸 즐겁게 지켜보면서 러시아의 대량 학살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비난의 날을 세웠다.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해 IOC가 2024년 파리 여름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에 대해 강도 높게 성토했다.
IOC는 지난달 25일 “어떤 선수도 단지 그들의 국적 때문에 올림픽 출전 자격을 잃어선 안된다”고 선언했다. 이어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을 파리올림픽에 ‘중립선수’ 자격으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유럽 각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SNS에 “(IOC 판단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잘못됐다. 러시아에 굴복하지 않고 고립을 강화해야 할 때다. 스포츠는 러시아 침공을 잊게 하는 정치 선전의 수단”이라고 썼다.

토마스 바흐(왼쪽) IOC 위원장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오는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파리올림픽 출전을 돕는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지난달 30일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두 나라 선수들을 초청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한국을 포함한 45개 회원국에 보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단 규모만 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구제하기 위해 IOC가 마련한 각본에 OCA가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OCA는 러시아와 가까운 편에 속하는 아랍권 국가들이 패권을 잡고 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침략국인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운동선수들은 종목을 막론하고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퇴출 됐다. 올해 폴란드에서 열리는 유러피언 게임에도 출전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IOC의 도움을 받은 두 나라가 이웃 대륙인 아시아의 종합대회에 ‘깍두기’로 참여해 내년 파리올림픽 출전할 길을 트려하는 셈이다. 카밀 보르티니치우크 폴란드 체육부 장관은 “상상할 수 없는 시나리오”라고 황당해 했다.
OCA가 아시아 국가에 보낸 공문에는 “아시아 선수들이 파리올림픽 출전 쿼터를 확보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러시아 선수가 1위, 한국 선수가 2위일 경우 한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주고 러시아 선수에겐 참가 메달만 제공하겠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종목의 순위 산정 방식 등 논란이 불가피한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해 혼란을 부채질했다. 현재 OCA가 아시아 회원국에 찬반 의향을 묻고 있는데, 대한체육회는 신중히 입장을 정해 회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