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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범석의 살아내다

"담배는 독약" 잊혀진 이주일 경고…골초父 따라 암 걸린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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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범석 서울대 암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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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오랜 기간 암 환자 진료를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암은 몸에 생기는 순간 이미 늦기에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 최선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예방이 안 되는 암도 있고 아무 잘못이 없어도 생기는 암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간에 암 발생 확률을 낮추는 확실한 방법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예방법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금연’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흡연 탓에 암에 걸린 가족을 곁에 두고도 쉽사리 끊지 못하는 게 바로 담배다.

“아드님도 담배 피우시나요? 아버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입에 댄 담배 때문에 암에 걸린 게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아드님은 이참에 담배를 끊지 그러세요?”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 아들들에게서 담배 냄새가 풀풀 풍길 때마다 이런 잔소리를 많이 한다. 그럴 때면 옆에 있던 어머니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꼭 한마디 한다. “의사 선생님 말 잘 들어. 담배 꼭 끊으라잖아. 하여간 너희 아버지나 너나 말 안 듣는 거는 다 똑같아. 당장 끊어.” 그러면 환자도 멋쩍은 표정으로 한마디 거든다. ‘그래. 지금까지 살아보니 엄마 말 틀린 거 하나 없더라. 암에 걸리니 숨이 차서 이제는 힘들어서 누가 피라고 해도 더는 담배를 못 피우겠다. 내가 담배를 이렇게 끊게 될 줄은 몰랐네. ”

하지만 의사의 권고와 아버지의 후회,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끊는 아들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담배 탓에 암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지금 아버지의 모습이 30년 뒤 당신 모습이라고 독하게 경고해도 이들은 담배를 쉽사리 끊지 못한다. 남자들에게 이상한 똥고집이 있어서 그런가, 눈앞의 실제 사례를 보고도 귀를 막은 채 담배를 피우다 결국 제 아버지처럼 암에 걸리고 만다.

암이 가장 무섭긴 하지만 담배는 암뿐만 아니라 만병의 근원이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담배엔 살충제 성분인 DDT, 연탄가스 성분인 일산화탄소, 조선 시대 사약으로 쓰이던 비소, 사형 가스인 청산 가스, 중금속 카드뮴·니켈 등 유해성분이 너무나 많다. 담배를 피운다는 건 이런 독극물을 폐에 들이붓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걸 뻔히 알면서 사람들이 계속 담배를 피우는 건 담배회사가 유해성분에 더해 중독물질을 첨가했기 때문이다. 담배를 못 끊는 것은 당신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끊을 수 없는 덫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흡연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담배는 혼자서 끊기는 매우 어렵지만 주변 도움을 받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흡연이 기호가 아닌 질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금연클리닉에 가는 건 기본이다. 주변에 금연 사실을 널리 알려서 피우다 걸리면 꽤 큰 벌금을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심삼일도 꼭 나쁘지만은 않다. 100번, 200번이라도 반복적으로 시도하면 결국 끊어진다.

골초였던 나의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에 폐암을 진단받았다. 아버지와 유전적으로 판박이인 내가 만일 아버지처럼 20대 초반부터 담배를 피웠다면 아마도 나 역시 지금쯤 폐암 환자가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은 현실이지만 환자들을 보면 그들이 겪는 일이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게 여겨지는 한편으로 담배를 배우지 않았음에 대해 무척 감사하면서 산다. 내가 담배를 피웠다면 지금쯤 나는 죽은 목숨일 텐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암에 걸리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보너스로 주어지는 인생이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방식도 금연을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다. 당장 내게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도 체감해보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약간의 관찰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일이었다. 기록적인 한파에 눈이 얼어붙어 길거리가 빙판이 되었던 날이었다. 그날 외래 진료를 보는데 오전에만 환자 두 분이 낙상한 채 왔다. 한 분은 차에서 내리다가 넘어졌고 다른 한 분은 집 앞에서 넘어졌다고 했다. 똑같이 낙상했는데 결과는 사뭇 달랐다. 그중 한 분은 심지어 뼈가 통째로 부러져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지만 다른 환자는 부상이 가벼웠다. 그날 내원한 또 다른 82세의 환자분은 외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도 오다가 넘어질 뻔했어요. 다행히 균형을 잡아서 넘어지진 않았지만 정말 큰일 날 뻔했지 뭐예요. 넘어졌으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내 친구 중 한 명은 넘어져서 허리뼈가 주저앉았는데 수술도 안 된다고 하더니 나중에 일어나지 못하더라고요. 그렇게 두어 달 누워서 시름시름 앓더니 그냥 가버렸어요. 가만 보니까 다리가 가늘어져서 흐물거리는 친구들이 꼭 넘어져요. 그래서 저는 다리 근육이 안 빠지도록 매일 스쿼트를 하고 다른 운동도 해요. 오늘 같은 날은 웬만하면 밖에 안 나가고요. 나갈 때는 아이들 불러서 같이 나가요. 다른 노인들도 넘어지면 안 되니까 눈 오는 날에는 애들한테 집 앞에 쌓인 눈을 수시로 치우라고 잔소리도 하고요.

그분은 낙상하지 않았음에 감사해 했고 친구들을 관찰하며 터득한 자신만의 낙상 예방 비결을 말해주었다. 친구의 사례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자신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거기에서 나아가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리 내다보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모든 일에는 예방이 최선이다. 암도 그렇다.

김범석의 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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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 금연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 금연은 무척 힘들다. 담배에는 온갖 중독 물질이 첨가되어 있고, 대마초보다 중독성이 더 강하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당신이 담배를 피워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국가는 손쉽게 세금을 걷고, 담배 회사는 돈을 챙기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제약회사와 병원이 이익을 본다. 몸 버리고 돈 버리고 가장 손해 보는 건 당신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따지기 이전에 주변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많은 암 환자가 담배부터 끊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무수히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경고를 가볍게 여긴다면 그들이 지금 겪는 현실이 바로 당신이 곧 겪을 현실이 될 것이다.

주변에 담배를 피워도 건강한 사람이 많다고? 담배로 건강을 잃고 세상을 떠난 수많은 사람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살아있는 사람만 보이는 착시 효과일 뿐이다. 당신은 괜찮을 거라고? 내일부터 끊을 거라고? 전자담배는 괜찮다고? 흡연에 관대해지는 만큼 암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암 환자의 경고를 실감하기 어렵다면 병원에 와서 사람들이 어떻게 아프게 되는지 한번 주의 깊게 관찰해보시라. 이왕 사는 것, 건강을 잃고 후회하기보다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고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을 잠시 상상해보고 체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단 한 명이라도 담배를 끊는다면, 그리하여 한 명이라도 암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면 나로서는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2023년 설날이 지났고 다시 새해다. 작심삼일의 약발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작심삼일이라도 사흘에 한 번씩 100번만 작심하면 한 해 동안 금연할 수 있다. 폐암으로 고인이 된 코미디언 이주일 씨는 임종을 앞두고 뼈저리게 후회하며 말했다.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