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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서도 못 찾은 실종 4남매, 58년 만에 만나게 해 준 열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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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에 밀려 엄마 손을 놓치는 바람에 생이별 해야만 했던 네 남매가 반세기 만에 재회했다.

서울동작경찰서에 따르면, 1965년 3월 당시 8세, 6세이던 장희란(65), 장경인(63)씨는 어머니와 함께 전차에 탔다가 미아가 됐다. 전차 속 빽빽한 인파 속에서 각자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과 치맛자락을 놓쳤고 어머니를 따라 내리지 못했다. 두 자매는 노량진 전차 역사에서 부모를 기다렸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이들을 발견한 누군가가 이들을 인근 경찰서로 데려갔고, 두 자매는 가족을 잃었다는 충격에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 그때부터 각각 ‘정인’ ‘혜정’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경찰에서 아동보호시설로 인계된 뒤 성인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헤어진 뒤 서로 찾지 못하던 장기 실종 가족 언니 장희재 씨와 동생 장희란 씨가 31일 오후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58년 만에 다시 만나 끌어안고 있다.  동작경찰서는 아동권리보장원과 함께 경찰 DNA 대조 등을 통해 지난 1965년 3월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실종된 장 씨 가족 4남매 중 여동생 2명을 모두 찾아 이날 재회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뉴스1

헤어진 뒤 서로 찾지 못하던 장기 실종 가족 언니 장희재 씨와 동생 장희란 씨가 31일 오후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58년 만에 다시 만나 끌어안고 있다. 동작경찰서는 아동권리보장원과 함께 경찰 DNA 대조 등을 통해 지난 1965년 3월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실종된 장 씨 가족 4남매 중 여동생 2명을 모두 찾아 이날 재회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뉴스1

가족 곁에 남은 맏언니와 맏오빠인 장희재(69)씨, 장택훈(67)씨는 두 동생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 단서라곤 희재씨가 갖고 있던 동생 희란씨의 5살 무렵 증명사진뿐이었다. 헤어질 당시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남매는 세월이 흐르면서 두 동생을 잃은 장소도 가물해졌지만, 두 동생과 꼭 다시 만나겠다는 생각은 버린 적이 없었다. 막내 경인씨는 가족이 함께 살던 노량진은 물론 용산에 위치한 주민센터 등을 돌아다니며 두 동생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희재씨도 1983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2005년 KBS ‘아침마당’ 등에 출연하며 두 동생을 찾았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희재씨는 2021년 11월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안양만안경찰서를 찾아 두 동생에 대해 정식으로 실종신고를 했다. 두 동생이 실종된 곳이 서울 동작구라는 걸 확인한 경찰은 사건을 동작경찰서로 넘겼고, 동작경찰서는 같은 달 희재씨의 유전자(DNA) 정보를 채취해 아동권리보장원에 보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실종아동 DNA를 등록·보관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12월엔 경인씨도 인천연수경찰서에 자신의 DNA 정보를 제출했다.

마지막 희망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인씨가 DNA 정보를 경찰에 제출한 그달 아동권리보장원은 “DNA가 유사한 사람이 있다”고 경찰에 통보했다. DNA 대조 결과 지난 26일 네 사람은 같은 혈육으로 확인됐다. 그렇게 정인·혜정으로 불리던 두 자매는 언니, 오빠와 함께 희란·경인이라는 자신의 원래 이름도 되찾을 수 있었다.

 헤어진 뒤 서로 찾지 못하던 장기 실종 가족 장택훈, 장희재, 장경인, 장희란 남매가 31일 오후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58년 만에 다시 만나 가족사진을 보며 이야기 나누고 있다. 테이블에 서로가 가져온 옛 사진들이 놓여 있다. 뉴스1

헤어진 뒤 서로 찾지 못하던 장기 실종 가족 장택훈, 장희재, 장경인, 장희란 남매가 31일 오후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58년 만에 다시 만나 가족사진을 보며 이야기 나누고 있다. 테이블에 서로가 가져온 옛 사진들이 놓여 있다. 뉴스1

네 남매는 31일 동작경찰서가 마련한 ‘장기 실종자 가족 상봉식’에서 58년 만에 재회했다. 네 남매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둥켜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셋째 희란씨는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엄마를 만나면 한번이라도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라며 울먹였다. 희재씨는 “내년이면 내 나이 70세가 된다”며 “더 늦기 전에 동생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장씨 네 남매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DNA 검사 덕분이다. 경찰이 채취한 실종아동과 보호자의 DNA는 국립과학수사원으로 맡겨진다. 이후 분석을 마친 DNA 결과는 아동권리보장 ‘실종아동업무시스템’에 보관된다. 지난해 5월 기준 실종아동업무시스템에는 실종아동의 유전정보 3만8216건과 실종아동을 찾는 보호자의 유전정보 3980건이 관리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이 시스템을 통해 실종아동 658명이 가족 품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1년 이상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종 아동 수는 1000여명에 달한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유전자 검사는 장기실종을 찾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며 “본인이 실종 아동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종 아동이 있는 보호자라면 가까운 경찰서에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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