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세에도 130㎞ 거뜬히…구대성은 말했다 “야구와 늘 함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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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롱 코리아 감독 시절이던 2018년 9월 국내에서 열린 트라이아웃 도중 환하게 웃고 있는 구대성. 연합뉴스

질롱 코리아 감독 시절이던 2018년 9월 국내에서 열린 트라이아웃 도중 환하게 웃고 있는 구대성. 연합뉴스

“54세의 투수가 여전히 공을 던지고 있다. 심지어 타자들을 막아냈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식 SNS는 한 50대 중년 신사의 투구 영상을 놓고 이렇게 표현했다. 아들뻘 타자들을 꽁꽁 묶는 장면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다.

1969년생, 우리 나이로 쉰 넷. 자신보다 4살 아래의 92학번 후배들이 이미 감독 자리를 여럿 꿰찼고, 7살 어린 이승엽(47)과 박진만(47)이 올해부터 사령탑이 됐으니 세월이 꽤 많이 흐르기는 했다.

그러나 야구를 향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과거 시속 150㎞를 넘나들던 강속구와 변화무쌍하게 춤추던 백도어 슬라이더는 사라졌지만, 여전한 노련미와 제구력으로 마운드에서 위용을 내뿜는다. 프로야구 ‘전설의 좌완’ 구대성(54) 이야기다.

최근 호주야구리그(ABL)에서 깜짝 등판해 야구팬들을 놀라게 한 구대성을 1월의 마지막 날 전화로 만났다. 현재 시드니에서 거주 중인 구대성은 “처음에는 멀리 호주까지 온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투수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마운드를 밟게 됐다”고 웃었다.

깜짝 등판은 질롱 코리아(한국 유망주 선수들이 파견된 호주 도시 질롱 연고의 구단) 유니폼을 입고 이뤄졌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간 중단됐던 질롱 코리아는 올겨울 다시 구성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송찬의(24·LG 트윈스)와 장재영(21·키움 히어로즈), 김진욱(21·롯데 자이언츠) 등 각 구단 샛별들이 모여 ABL 일정을 소화했다.

최근 질롱 코리아 유니폼을 입고 깜짝 등판한 구대성의 투구 장면. 54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시속 130㎞ 가까운 공을 던지며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사진 질롱 코리아

최근 질롱 코리아 유니폼을 입고 깜짝 등판한 구대성의 투구 장면. 54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시속 130㎞ 가까운 공을 던지며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사진 질롱 코리아

4년 전 질롱 코리아 사령탑을 맡았던 구대성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질롱 코리아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이병규(49) 감독이 선배에게 등판을 제안했고, 구대성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실전 출격이 성사됐다.

구대성은 “사실 집에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기본적인 웨이트트레이닝과 러닝은 물론 캐치볼도 소화한다. 또, 70m 거리에 망을 세워놓고 정확히 던지는 연습을 한다”면서 “여기에서 청소년대표팀 코치로도 일하고 있고, 지역에서도 간간이 선수들을 봐주며 함께 운동하고 있다. 야구는 여전히 나와 함께한다고 보면 된다”고 녹슬지 않은 어깨의 비결을 내놓았다.

모처럼 마운드로 돌아온 프로야구 통산 214세이브(역대 5위)의 레전드. 실력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지난달 애들레이드 자이언츠를 상대로 던진 3경기에서 2와 3분의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54세 투수의 ‘해외토픽감’ 역투가 빛난 순간. ABL 최고령 등판 기록도 ‘당연히’ 갈아치웠다.

1996년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MVP와 신인왕을 수상한 구대성(왼쪽)과 박재홍. 중앙포토

1996년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MVP와 신인왕을 수상한 구대성(왼쪽)과 박재홍. 중앙포토

그러나 당사자는 정작 “불펜에선 직구가 130㎞까지 나오는데 막상 실전에선 120㎞가 겨우 찍히더라. 백도어 슬라이더도 예전 같지 않다. 그나마 공이 원체 느리다 보니까 타자들이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며 손을 저었다. 이어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종종 투수로 뛸 생각이다. 그렇게라도 야구팬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구대성은 1993년 빙그레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했다. 이어 1996년 18승 24세이브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내면서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3년 뒤에는 송진우(57), 정민철(51) 등과 함께 한화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이끌며 한국시리즈 MVP로 올라섰다.

KBO리그를 평정한 구대성은 2001년부터 일본프로야구(NPB)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를 거치면서 한미일 무대를 모두 경험한다. 이후 2006년 다시 한화로 돌아온 뒤 2010년 은퇴했지만, 호주로 건너가 선수와 지도자로 번갈아 활약하며 지금까지 야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정대현과 구대성,이승엽(왼쪽부터)이 밝은 표정으로 귀국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정대현과 구대성,이승엽(왼쪽부터)이 밝은 표정으로 귀국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야구를 향한 애정도 그대로다. 구대성은 “여기에서도 TV와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한다”면서 “한화 경기도 종종 챙겨본다. 비록 최근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투타에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보인다. 밸런스만 잘 맞춰간다면 반등하리라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끝으로 구대성은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 베어스가 시드니로 왔다고 들었다. 다행히 전지훈련지가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다. 조만간 들러서 (이)승엽이와 후배 코치들을 만날 계획이다”고 말했다. 과거 영광을 함께했던 추억의 인물들이 떠올라서였을까. 끝인사를 전하는 구대성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넘쳤다.

◆구대성은…
생년월일 : 1969년 8월 2일 대전
출신교 : 신흥초-충남중-대전고-한양대
프로 데뷔 : 1993년 빙그레 입단
통산 성적 : 569경기 67승 71패 214세이브 평균자책점 2.85
수상 경력 : 1996년 KBO MVP, 1999년 한국시리즈 MVP
별명 : 대성불패, 일본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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