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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치하 '기적 탈출' 압둘…조선소 직원 된 그의 한국살이 1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항 앞에서 노숙, 생사를 건 탈출  

한국살이 1년. 약사에서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직원으로 변신한 압둘씨. 김윤호 기자

한국살이 1년. 약사에서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직원으로 변신한 압둘씨. 김윤호 기자

압둘 와히드 아흐마디(50)는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있었다. 옷가지를 담은 가방 3개를 들고 부인과 아들·딸 4명과 함께 피란민 수천 명에 둘러싸인 상태였다. 그는 당시 꼬박 이틀간 공항 앞에서 노숙하며 태극기 배지를 단 군인이나 한국 영사관 직원, 태극기가 새겨진 항공기만 애타게 찾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약사로 근무 중인 압둘씨. 본인제공

아프가니스탄에서 약사로 근무 중인 압둘씨. 본인제공

압둘 가족은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함락되면서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 내 한국 병원에서 약사로 일했기 때문이었다. 탈레반은 해외 정부 조력자(특별기여자)를 일종의 배신자로 본다. 20여년간 미국 등과 전쟁을 한 탈레반은 해외 조력자를 붙잡아 감옥에 보내거나, 채찍질하고, 심하면 참수를 한다고 전해졌다. 한국 병원에서 일한 해외 조력자인 압둘과 그 가족은 목숨 건 탈출을 감행했다.

미라클 작전 성공, 제2의 삶 

아프가니스탄에서 약사로 근무할 당시 압둘씨. 본인제공

아프가니스탄에서 약사로 근무할 당시 압둘씨. 본인제공

한국 정부는 이른바 '미라클' 작전을 추진했다. 압둘 등 한국 정부 조력자와 그 가족 390여명을 군 수송기를 이용해 카불에서 데려오기로 했다. 이렇게 압둘 가족은 태극기가 걸린 군 수송기를 타고 탈레반 치하에서 탈출,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고 1년 전인 지난해 2월 울산 동구에 탈출 동료 150여명과 터를 잡고 한국인(거주 특별 비자)으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압둘의 한국살이 1년은 어땠을까. 새해를 맞은 그의 바람은 무엇일까.

지난 30일 오전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한국 정착 1년 차가 된 압둘은 중년의 조선소 직원으로 변신해 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청하는 그의 표정에서 더는 탈레반에 대한 두려움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불안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사택 아파트에 둥지를 튼 그는 이제 약사가 아닌 현대중공업 협력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선박 엔진 설비 부서에서 엔진 표면 연마 작업을 담당하면서다. 압둘은 "전 이제 Korean(코리안)"이라며 영어와 서툰 한국어 '바디랭기지'를 섞어 한국 생활을 전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에 가서 가족과 식사하고, TV를 보고 잠이 들어요. 주말엔 한국어를 배우고, 가족과 시장이나 마트도 가요. 스마트폰으로 쿠팡 쇼핑도 즐겨요."

큰 아들 대학생으로, 안전한 한국살이 1년 

한국살이 1년. 약사에서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직원으로 변신한 압둘씨. 김윤호 기자

한국살이 1년. 약사에서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직원으로 변신한 압둘씨. 김윤호 기자

생사를 함께한 가족 근황도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관습 탓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아내 아타이(42)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고 있다. 장남 바넷(18)은 올해 새내기 대학생이 된다. 차남 타와부(17)와 딸 주할(15)·주흐란(13)은 울산 지역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며 미래를 준비 중이다.

그렇지만 타향살이 1년이 마냥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뭐든 빨리빨리 해야 하는 문화적인 차이, 맵고 짠 한국 음식. 추운 날씨와 의사소통 등 어려움도 있단다. 특히 음식 적응이 어려워 그는 아직 거의 매일 아프가니스탄 음식을 도시락에 담아와 회사에서 따로 점심을 먹는다.

"지난해 4월쯤엔 아프가니스탄 학생 학교 배정에 지역 학부모들이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며 불만스러워 했어요. 그땐 좀 마음이 그랬지만 지금은 아이들 모두 너무 사이가 좋아요."

판사였던 형은 아직 탈레반에 쫒겨  
압둘은 자신의 형이 탈레반에 쫓겨 도망자 신분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머물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탈레반이 집권하기 전 (형은) 판사였어요. 그런 점 때문에 도망 다니고 있어요. 한국에서 안전하게 전 지내지만, 걱정이 큽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국외 탈출을 위해 주민들이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국외 탈출을 위해 주민들이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압둘 가족은 아프가니스탄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페르시아력에 따라 춘분(3월 21일)을 새해로 본다. 이날 아프가니스탄에선 음식을 차려 놓고, 가족, 지인과 덕담을 나누며 새해를 축하한다. 나들이 가는 것도 관습이다.

그의 새해 바람은 여느 한국인 가장과 다르지 않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는데, 열심히 뒷바라지해서 마음껏 미래를 준비했으면 해요. 아이들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새해에도 건강하게 열심히 일할 수 있으면 합니다."

한국 정부에 감사. 가족 위해 열심히 살 것 

아프간 학생 등교를 환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아프간 학생 등교를 환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압둘은 한국 정부에 고맙다고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집과 친구, 모든 것을 버리고 고국을 떠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약사로 생활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제가 하는 일에 만족감이 높을 순 없어요. 그렇지만 나와 가족을 탈레반으로부터 탈출시켜줬고, 지금껏 안전하게 지켜주고 지원해주는 한국 정부가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울산 동구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는 28가구, 150여명이다. 각각 99㎡(30평형대)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사택인 중앙아파트에 정착했다. 가장 역할을 하는 28명은 모두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서 근무 중이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약사·의사·간호사·운전기사·청소부 등으로 일하면서 한국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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