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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대체율 인상? 젊은이들 무슨 죄 졌나"…이상해진 연금개혁 [VIE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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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7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고객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고객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후세대 부담을 줄이자고 시작한 연금개혁인데, 갑자기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안이 급부상하고 있다. 2018년 4차 재정추계 때 전문가 그룹이 극한 갈등을 했고, 문재인 정부의 허송세월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갈등이 되살아났다. 여기에다 정부는 "국회 일"이라면서 파장 줄이기에 급급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윈회(이하 자문위)는 30일 오전 '국민연금 보험료율 9%→15% 상향 가닥' 보도〈중앙일보 30일자 1,5〉 관련 설명자료에서 "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등을 포함한 다양한 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아직 합의된 내용이 없다. 합의를 위해 추가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보도된 국민연금 보험료율 15%의 단계적 인상 방안은 국회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방안으로 알고 있으며, 정부안이 아니다"라며 "연금특위에서 개혁방안을 마련하면 참고하고, 국민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올해 10월 국회에 (개혁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617자 분량의 설명자료를 1분만에 읽고 퇴장했다.

김연명(오른쪽), 김용하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1회 국회(임시회) 제4차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김연명(오른쪽), 김용하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1회 국회(임시회) 제4차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이에 앞서 27일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잠정치를 공개했다. 저출산·고령화 심화 탓에 2055년 기금이 소진된다. 연금을 지급하려면 26.1%의 보험료를 내야 하고, 2080년 35%로 치솟는다. 연금개혁의 절박성이 더 간절해졌다. 가장 급한 게 재정을 안정시키는 것이고, 그리해서 국민연금이란 제도를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지난 24년 보험료는 9%로 묶였다. 연금 수령자는 급증하고, 보험료를 낼 경제활동인구는 5년째 감소하는데도 손을 안 댔다. 그래서 국회 자문위에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데는 동의했다고 한다. 그게 9%에서 15%로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한 측에서 보험료를 그리 올리되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b안)고 나섰고, 그게 유력안이 됐다. 다른 유력안은 지금처럼 소득대체율 40%에 보험료 15%(a안)를 내세웠다. b안측이 회의 막판에 '대체율 45%-보험료 15%'를 수정 제안하자 a안파가 '대체율 30%-보험료 12%'로 맞섰다고 한다.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연금개혁이 이상한 데로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이 존속하려면 지금 당장 20.4%의 보험료가 필요하다. 자문위의 15%안도 턱없이 부족한 마당에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가장 시급한 것은 보험료 인상을 통한 재정 안정화이고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대체율 50% 상향은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후 문 대통령이 추진하다 2017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전 정부가 2018년 국회에 제출한 4지선다형 개혁방안의 4안(대체율 50%-보험료 13%)에 가깝다. 당시 소득대체율 인상 위주로 흘러가자 관련 위원 2명이 반발하며 사퇴했었다. b안파가 소득대체율을 올리려는 이유는 세계 최고수준의 노인빈곤율(38.5%)를 개선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전국에 한파특보가 내려진 지난 25일 점심식사를 하려는 노인들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전국에 한파특보가 내려진 지난 25일 점심식사를 하려는 노인들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소득대체율 인상은 빈곤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 소득대체율 40%란 걸 단순화해보자. 생애평균소득 100만원인 사람이 40년 가입하면 노후에 40만원의 연금을 받고, 대체율을 50%로 올리면 50만원 받는다. 하지만 실제 40년 가입자는 거의 없다. 신규 수급자의 가입기간은 평균 17~18년에 불과하다. 소득대체율 40%일 때 17만원 받고, 50%가 되면 21만 2500원 받는다. 당장 오르는 게 아니라 먼훗날에 오른다. 김상호 교수는 "소득대체율을 일괄적으로 올리면 모든 가입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빈곤 노인에게 도움이 안 된다. 국민연금으로 노후빈곤을 줄이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 게다가 대체율을 올리면 보험료가 더 올라야 하는데, 젊은이들이 무슨 죄를 졌느냐"고 지적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중앙일보 리셋코리아 위원)는 "노후빈곤을 완화하려면 기초연금 지급 범위를 축소해 저소득 노인에게 더 지급하고, 나아가 기초생활보장제와 통합해 최저연금보장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상호 교수도 "국민연금은 재정안정화 조치를 한 뒤 낸 만큼 받는 소득비례제도로 바꾸고,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과 기초연금을 통합해 최저소득보장제도로 구조를 바꾸자"고 말했다.

 두루누리(저소득 근로자 보험료 지원),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등을 확대해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리는 게 노후연금 증액에 더 효과적이다. 출산·군복무·실업 크레디트(가입기간 추가 인정제)를 확대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국민연금 가입자로 있을 때 보험료를 조금이라도 올렸어야 하는데 이미 가입자에서 빠져나갔다. 청년세대에게 진짜 사과해야 된다고 본다"며 "그래도 보험료 인상이 늦어지면 그 다음 청년에게 더 큰 부담이 가기 때문에 이제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청년 일자리, 군·실업 크레디트 확대 등의 다양한 청년 지원 정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거 두 번의 개혁(99,2007년)에서 보험률를 올리지 못했다.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이 가지 않게 지금 인구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빨리 보험료를 인상해야 더 많은 사람이 부담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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