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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천국의 배신? 오아시스 찾듯, 제주서 충전소 헤맨 사연

중앙일보

입력

제주도는 전기차와 전기 충전소 보급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지만, 충전소를 이용하는 것은 아직은 불편했다. 최근 3박 4일간 제주에서 전기차를 이용해 본 체험기다.

지난 22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풍력 발전기 앞에 전기차가 서 있다. 김민상 기자

지난 22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풍력 발전기 앞에 전기차가 서 있다. 김민상 기자

30일 중앙일보가 국토교통부·환경부 자료를 분석했더니 제주도의 인당 전기차 등록 비율은 4.86%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승용‧승합‧화물 등을 모두 합한 전기차 등록 대수는 3만2976대로 경기도(7만7648대)나 서울(5만9327대)보다 적었지만, 인구(67만8159명)로 나눈 비율은 17개 시‧도 평균(0.76%)보다 6배 이상 높았다.

인구당 전기차 비율 평균보다 6배

전기차 충전소 등록 비율도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제주도 내 총 5799대가 설치돼 인구 대비 0.86%로 집계됐다. 역시 경기도(5만445대)나 서울(3만4766대)보다 적지만 인구 대비 비율은 전국 평균(0.38%)보다 2배 이상 높다. 최근에는 대기업이 카페 브랜드와 손잡고 충전과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제주도 서귀포에 지난달 문을 연 이런 복합문화공간을 찾았더니 오전 10시부터 급속 충전기 3대가 모두 사용 중이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충전 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갔지만, 1~2분 전 먼저 도착한 차가 있어서 기회를 빼앗겼다.

전기 충전 게이지는 10%대를 가리켰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 탓에 전기차 난방을 켜서 전력을 많이 소비해서다. 이런 충전량으로는 4인 가족의 남은 제주 여행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카페 직원에게 물어보니 “주변에 급속 충전기 찾기가 쉽지 않아 개장 한 달도 안 돼 카페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며 “급속 충전기는 20~30분이면 자리가 나오니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줬다. 직원의 안내대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충전소를 기웃거리니 15분 만에 다른 급속 충전기에서 완충됐다는 표시가 뜨면서 차 한 대가 빠졌다.

1시간에 2%포인트 올린 완속 충전기  

마침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새로운 차량에 기회를 뺏길까봐 빠른 손놀림으로 급속 충전기 플러그를 손에 들었다. 완속 충전기와 달리 전력선이 팔뚝만큼 두껍고 무거웠다. 한국전력공사가 관리하는 이 급속 충전기는 시간당 100㎾ 속도로, 20분 만에 충전량이 10%에서 50%대로 올랐다. 요금은 1만5000원을 냈다. 전용 카드를 발급받으면 할인이 되지만 전기차 실구매자가 아니라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지난 23일 제주 서귀포시에 SK렌터카가 세운 전기차 충전 복합 시설인 에코라운지가 있다. 카페 브랜드 테라로사가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민상 기자

지난 23일 제주 서귀포시에 SK렌터카가 세운 전기차 충전 복합 시설인 에코라운지가 있다. 카페 브랜드 테라로사가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민상 기자

김녕항 근처 숙소에는 충전기가 없었다. 급속 충전기를 알기 전까지는 시내 완속 충전기를 찾은 뒤 5000원을 내고 1시간을 꽂아 놨지만 차내 충전 계기판이 49%에서 51%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표기된 속도는 7㎾로 다른 급속 충전기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섭지코지 인근 사설 주차장에서 또 다른 완속 충전기를 발견하고 2000원을 결제했지만, 고장이 났는지 작동되지 않았다. 전기차를 처음 장기간 이용하다 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타본 전기차는 지난해 1월 국내에 출시된 최신형 모델이다.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는 최대 417㎞로, 150㎾ 속도 급속 충전기 기준으로 10%에서 80%까지 35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고 업체 측은 안내했다. 5분 만에 주유로 500㎞ 이상 갈 수 있는 내연기관만 경험해 본 소비자로서 2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전기차 시설은 아직도 어색했다. 감귤 체험장에 급속 충전기를 우연히 맞닥뜨린 경험이 한 번 있었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났다는 표현이 저절로 나왔다.

“고속도로나 관광지엔 급속, 주거지엔 완속” 

전기차 이용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집밥의 소중함’이라는 단어가 종종 올라온다. 아파트 단지에 완속 충전기라도 한 대 있다면 전기차 사용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기차를 직접 운행해보니 넉넉한 충전까지 6~8시간이 걸리는 완속 충전기가 주거지 주변에 있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양적 팽창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맞춤형 충전기 설치가 중요하다”며 “고속도로나 관광지역는 급속을, 주거지에는 완속 충전기를 설치하고 보급 속도를 높여야 전기차 시대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포항 앞에 전기차가 서 있다. 운전석 앞에 추가로 트렁크가 있어 여행객은 더욱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김민상 기자

22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포항 앞에 전기차가 서 있다. 운전석 앞에 추가로 트렁크가 있어 여행객은 더욱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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