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전기차와 전기 충전소 보급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지만, 충전소를 이용하는 것은 아직은 불편했다. 최근 3박 4일간 제주에서 전기차를 이용해 본 체험기다.
30일 중앙일보가 국토교통부·환경부 자료를 분석했더니 제주도의 인당 전기차 등록 비율은 4.86%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승용‧승합‧화물 등을 모두 합한 전기차 등록 대수는 3만2976대로 경기도(7만7648대)나 서울(5만9327대)보다 적었지만, 인구(67만8159명)로 나눈 비율은 17개 시‧도 평균(0.76%)보다 6배 이상 높았다.
인구당 전기차 비율 평균보다 6배
전기차 충전소 등록 비율도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제주도 내 총 5799대가 설치돼 인구 대비 0.86%로 집계됐다. 역시 경기도(5만445대)나 서울(3만4766대)보다 적지만 인구 대비 비율은 전국 평균(0.38%)보다 2배 이상 높다. 최근에는 대기업이 카페 브랜드와 손잡고 충전과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주도 서귀포에 지난달 문을 연 이런 복합문화공간을 찾았더니 오전 10시부터 급속 충전기 3대가 모두 사용 중이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충전 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갔지만, 1~2분 전 먼저 도착한 차가 있어서 기회를 빼앗겼다.
전기 충전 게이지는 10%대를 가리켰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 탓에 전기차 난방을 켜서 전력을 많이 소비해서다. 이런 충전량으로는 4인 가족의 남은 제주 여행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카페 직원에게 물어보니 “주변에 급속 충전기 찾기가 쉽지 않아 개장 한 달도 안 돼 카페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며 “급속 충전기는 20~30분이면 자리가 나오니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줬다. 직원의 안내대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충전소를 기웃거리니 15분 만에 다른 급속 충전기에서 완충됐다는 표시가 뜨면서 차 한 대가 빠졌다.
1시간에 2%포인트 올린 완속 충전기
마침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새로운 차량에 기회를 뺏길까봐 빠른 손놀림으로 급속 충전기 플러그를 손에 들었다. 완속 충전기와 달리 전력선이 팔뚝만큼 두껍고 무거웠다. 한국전력공사가 관리하는 이 급속 충전기는 시간당 100㎾ 속도로, 20분 만에 충전량이 10%에서 50%대로 올랐다. 요금은 1만5000원을 냈다. 전용 카드를 발급받으면 할인이 되지만 전기차 실구매자가 아니라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김녕항 근처 숙소에는 충전기가 없었다. 급속 충전기를 알기 전까지는 시내 완속 충전기를 찾은 뒤 5000원을 내고 1시간을 꽂아 놨지만 차내 충전 계기판이 49%에서 51%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표기된 속도는 7㎾로 다른 급속 충전기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섭지코지 인근 사설 주차장에서 또 다른 완속 충전기를 발견하고 2000원을 결제했지만, 고장이 났는지 작동되지 않았다. 전기차를 처음 장기간 이용하다 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타본 전기차는 지난해 1월 국내에 출시된 최신형 모델이다.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는 최대 417㎞로, 150㎾ 속도 급속 충전기 기준으로 10%에서 80%까지 35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고 업체 측은 안내했다. 5분 만에 주유로 500㎞ 이상 갈 수 있는 내연기관만 경험해 본 소비자로서 2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전기차 시설은 아직도 어색했다. 감귤 체험장에 급속 충전기를 우연히 맞닥뜨린 경험이 한 번 있었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났다는 표현이 저절로 나왔다.
“고속도로나 관광지엔 급속, 주거지엔 완속”
전기차 이용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집밥의 소중함’이라는 단어가 종종 올라온다. 아파트 단지에 완속 충전기라도 한 대 있다면 전기차 사용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기차를 직접 운행해보니 넉넉한 충전까지 6~8시간이 걸리는 완속 충전기가 주거지 주변에 있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양적 팽창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맞춤형 충전기 설치가 중요하다”며 “고속도로나 관광지역는 급속을, 주거지에는 완속 충전기를 설치하고 보급 속도를 높여야 전기차 시대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