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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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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영화 ‘기생충’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화제작이었다. 정점을 찍은 것은 아시아인에게는 그토록 어렵다는 오스카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역사적 순간이다. 그런 화려한 조명 속에서 우리는 또 한 인물에 눈길을 주게 된다. 수상 당시 봉준호 감독의 동시통역을 맡았던 최성재(Sharon Choi)씨의 활약상이다. 그는 후에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동시통역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열정이 담긴 치열한 노력과 통역을 위한 자기관리의 기록에 대해서다.

통역과 번역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른 영역이다. 특히 동시통역은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순간순간을 긴장하며 혼신을 힘을 기울여야 하는 그야말로 피 말리는 작업이다. 더구나 ‘새로 쓰기’ ‘고쳐 쓰기’를 할 수 없는, 한순간의 순발력에 모든 것을 거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한 초집중의 환경에서 가장 부드럽고 맛깔스럽게 그리고 완벽에 가깝게 통역을 해내는 동시통역사의 능력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특히 외국 정상과의 만남에서 그림자처럼 밀착 수행하는 동시통역사의 활약은 AI도 함부로 대체하지 못하는 ‘넘사벽’ 영역이다.

옳은 번역과 좋은 번역 사이
동시통역은 매우 특별한 능력
제2의 창작이라는 번역의 고통

외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번역이라는 문제를 지나칠 수 없다. 동시통역은 특별한 자격을 갖춘, 또 다른 능력의 영역이지만, 외국어 교육은 모국어와의 관계에서 번역 과정이 반드시 개입된다. 그런데 간혹 두 언어 사이에서 번역하기 난감한 어휘를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한국어로 번역이 잘 안 되는 외국어도 있고, 외국어로 잘 옮겨지지 않는 한국어 표현도 있다. 그런 어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왜 이런 표현들이 생겨났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독일어에 ‘Schadenfreude(샤덴프로이데)’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해(Schaden)를 입게 된 것을 기뻐하게(Freude) 되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이다. 딱히 우리말 한 단어로 옮기자니 막연해지는데, 어떤 이가 불쑥 “그거 ‘고소하다’네요”라며 한마디 툭 던진다. 제법 괜찮은 제안이다. 사돈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남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서 은근히 기뻐하는 때가 바로 ‘고소한’ 순간인가.

반대로 한국어에서 한마디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어휘 가운데 하나로 ‘눈치’가 있다. 우리는 이 어휘를 ‘~가 빠르다’ 혹은 ‘~를 채다’ 등의 용법으로 쓴다. 눈치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데 ‘없거나’ ‘제법인’ 녀석이다. 콜린스 온라인 사전에서는 이 한국인의 ‘눈치’를 성공의 비결이라고 토를 달고 있는데, 번역이 어려운 만큼 ‘Nunchi’라는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다.

번역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관용어를 다룰 때다. 관용어를 어휘 대 어휘로 번역하면 그 뜻을 제대로 옮길 수 없다. 그만큼 관용어는 한 언어의 문화적 산물이며, 때로는 어원을 찾아서 그 뜻을 이해하기도 한다. 관용어뿐만 아니라 토박이 사투리나 출발어와 목표어 사이에서 대등하게 존재하지 않는 표현이 번역의 난제들이다.

언어학에서 이론으로 다루는 많은 의제가 있지만, 나는 유독 ‘번역이론’에는 반기를 든다. 다양한 번역 대상물을 앞에 놓고 번역과정과 그 결과물에 대해서 어느 한 이론으로 정립하여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옳은 번역과 좋은 번역에는 두 가지 선택 사양이 있다. 원문에 충실할 것인지, 가독성을 위해 내용 전달에 충실할 것인지. 학술서처럼 전문용어가 많이 사용되는 전문서적에서는 되도록 원문에 충실할 것을, 문학작품이나 내용 중심의 저술은 원문의 어휘들보다 내용 전달에 용이하도록 풀어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을 갖는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 ‘e북’의 출현과 함께 ‘종이책의 종언’을 고한지도 꽤 되었지만, 종이책의 출판과 판매는 아직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최근에는 세계 각국에서 최첨단 도서관을 지어, 수려하고 독특한 외관이나 기능 면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사례들이 소개된다. 예전에는 종이책의 수장고였던 도서관이, 지금은 (학술)정보관으로서 인터넷 매체에 따른 다양한 정보 활용의 기능도 수행한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접하게 되는 책 가운데 역서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여전히 상당하다.

손에 집어 든 역서를 보면서 과연 원문은 어떻게 쓰여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남의 말과 생각을 옮기면서 무엇에 충실해야 할까. 저자는 과연 이러한 번역의도에 동의하고 있을까. 제2의 창작이라는 번역의 고통에서 무엇이 옳은 혹은 좋은 번역인지 때로는 원문 한 줄을 앞에 두고 고민이 깊어진다.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