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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 새벽배송…4시부터 뛰면 6만원 벌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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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9일 ‘쿠팡플렉스’로 부업을 하는 신 모씨가 서울 방배동 일대에서 새벽 배송을 하고 있다. 쿠팡플렉스는 쿠팡소속이 아닌 사업자 신분으로 배달을 한다.

29일 ‘쿠팡플렉스’로 부업을 하는 신 모씨가 서울 방배동 일대에서 새벽 배송을 하고 있다. 쿠팡플렉스는 쿠팡소속이 아닌 사업자 신분으로 배달을 한다.

지난 29일 오전 4시 서울 서초구에 있는 쿠팡 배송센터. 일요일에다 동이 트기도 전이었지만, 신모(41)씨는 이날 배송해야 할 물건을 찾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차량으로 배송하는 ‘쿠팡플렉스’ 아르바이트를 3년째 하고 있다. 이날 할당된 물건은 총 49건, 신씨는 쿠팡 프레시백(신선식품 배송에 사용되는 보냉팩)과 박스를 K3 자동차 뒷좌석과 트렁크에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쌓아 넣었다.

그에게 배정된 구역은 서초구 방배동 빌라촌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많았다. 신씨는 “무거운 박스를 들고 계단을 오르면 힘들긴 하지만, 고층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대기 시간이 오래 걸려 장·단점이 있다”며 “빌라 5층 정도는 계단을 뛰어서 오르내린다”고 말했다. 오전 7시까지 마쳐야 하는 새벽 배송은 ‘시간 싸움’이어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내비게이션 지도를 따라 운전하고,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을 지나 집 앞에 물건을 놓은 뒤 인증 사진을 찍는 과정을 49번 거치자 오전 6시 20분이었다. 신씨는 “고객이 문 앞에 둔 프레시백을 회수해 반납하면 개당 200원을 줘서 빼먹지 않고 가져온다”고 했다. 이날도 배송을 마치고 11개의 프레시백을 캠프에 반납한 뒤 오전 7시가 다 돼서야 신씨는 퇴근했다. 수익은 6만3700원이었다.

지역축제 공연을 기획하는 1인 사업체를 운영하던 신씨는 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확 줄어들자 ‘투잡’을 택했다. 지난해 주 7일 새벽 배송을 할 때는 매달 최대 200만원을 벌었다. 요즘은 주 3회 새벽 배송을 한 뒤 출근한다. 그는 “쿠팡플렉스는 원하는 날만 일해도 되는 제도여서 부업으로 선택했다”며 “잠이 부족하지만 생활비 걱정에 당분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신씨처럼 부업이 일상이 된 자영업자·소상공인이 크게 늘었다. 최근엔 경기 침체와 고물가·고금리까지 겹쳐 직장인과 영끌족(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한 사람)도 투잡에 뛰어들고 있다. 하나의 일자리로는 생활비가 부족해 여러 직업을 갖는 ‘생계형 n잡러’가 된 셈이다.

대기업 직장인 A(37)씨는 두 달 전부터 매일 저녁 퇴근 후 3~4시간씩 편의점 배달원으로 일한다. 토요일마다 자전거를 끌고 나가 배달 콜을 잡는다. A씨는 “2021년 영끌 해서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갑자기 이자가 월 40만원가량 올라 배달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기준 투잡에 나선 가장(가구주)은 36만8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7년 26만1000명에서 5년 만에 41%(10만7000명) 늘었다. 20·30세대 부업자는 2017년 7만8000명에서 지난해 10만7000명으로 37.2% 증가했다. 통계청 경제활동 인구조사를 분석한 수치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은 청년층이 비대면·플랫폼 일자리나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통해 추가 소득원을 마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소상공인 마케팅 업체를 운영하다가 현재 식자재 영업으로 투잡에 나선 B(43)씨는 “주변 상인이 ‘요즘은 투잡·쓰리잡 안 뛰면 이상한 상황’이라고 말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B씨는 한때 월 500만원에 달하던 수익이 코로나19 이후 10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그는 “수입은 한계가 있고, 금리가 오르다 보니 지출은 눈에 띄게 늘어서 ‘생계형 n잡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고용 형태가 다변화하고, 원하는 시간에 부업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배달 라이더 수는 2019년 상반기 11만9626명에서 지난해 상반기 23만7188명으로 3년 새 약 두 배가 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근로시간 축소와 인식 변화, 배달 플랫폼 증가 등으로 노동 시장 패턴이 바뀐 가운데 최근에는 물가상승과 경기 침체로 생활비가 부족해 부업 전선에 내몰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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