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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약이 될까 독이 될까, 국민의힘 전당대회

중앙일보

입력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녹록지 않은 여당의 정치적 상황
‘윤핵관’ ‘윤심’으로만 얼룩지면
내년 총선에도 부정적 영향 커져
국민에 줄 기회·비전의 경쟁 되길

‘핵관’이란 단어가 화제가 됐던 건 이명박 대통령 초기 이동관 대변인부터였다. 출입기자들에게 백브리핑을 하며 이 대변인이 익명을 요청하자 처음엔 ‘청와대 관계자’라고 썼다. 그러다 한 매체가 이 대변인의 발언은 따로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 인용하자 대부분이 따라가면서 ‘이핵관 이동관’이란 별명이 굳어졌다. 취임 초 류우익 비서실장이 “앞으로 청와대의 모든 공식 발표는 대변인만을 통해서 하라”고 지시한 영향도 있었다. 이 대변인과 달리 다른 수석비서관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 일반 비서관은 ‘청와대 관계자’로 표기하던 시절이었다.

15년이 지나 ‘윤핵관’이란 단어가 정국의 키워드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3월8일 국민의힘 대표를 뽑을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향배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나 친소 관계를 따지는 ‘윤심(尹心)’의 메신저로 매칭이 되면서다. 그런데 ‘윤핵관’ ‘윤심’이란 단어가 향후 한 달을 지배하면 할수록 여당의 내년 총선엔 부정적 영향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을 듯싶다. 대선 승리 때의 부푼 기대와 달리 지금 상황은 여당에 녹록지 않다.

자신이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층이라 답하는 이들은 요즘 31.9%다(한국갤럽, 지난 17~19일 조사). 이 중도층의 대통령 지지도는 부정(63%)이 긍정(29%)보다 높다. 보수층이야 64% 대 31%로 대통령이 잘한다고 평가한다. 진보층은 10% 대 85%로 평가가 야박하다. 중도층의 정서가 진보에 더 가까운 지형이다. 이 중도층 흡인에 실패하면 여당의 내년 총선은 어렵다. 대통령 지지도 기준으론 최대 표밭인 수도권에서 36% 대 55%로 밀리고 있다. 여론의 빅마우스인 30대(22% 대 66%), 40대(24% 대 73%) 50대(35% 대 63%)에서도 열세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야당이 죽을 쑤고는 있다. 정당 지지도만으론 여당(37%)이 민주당(32%)을 조금 앞서 있다. 하지만 총선에 다가가 이 리스크가 사라지고 야당의 새 리더십이 구축될 가능성도 있다. “모든 게 다 문재인 탓”도 내년 4월 쯤에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구도가 바뀔 수 있다. 경제 상황? 확실히 여당 편이 아니다. 그러니 국민의힘의 새 3·8리더십은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고비다.

100% 책임당원 투표만으로 선거를 치른다고 한다. 평균 민심과는 오차가 있을 터다. 울타리 내에서 오로지 충성, 강경, 극우의 목소리가 다양한 이슈를 압도·지배하는 상황은 늘 참사를 낳았다. 개헌 저지선만 간신히 지켜낸 103석으로 보수 정당 사상 60년 만의 최대 참패가 2020년 총선이었다. 징조는 1년 전부터였다. 문재인 정부의 독주에 밀려 당은 균형을 잃고 속수무책 오른쪽으로만 달려갔다. 통진당 해산 등의 성과로 2019년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부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라며 사실상 동행을 선언했다. 뒤이어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 등의 ‘5·18 모독 발언’이 터졌다. 총선에서도 후보들의 세월호 유가족 모독, 진보적 30·40대를 “거대한 무지와 착각”으로 공격한 발언 등으로 중도를 밀쳐버렸다.

박근혜 정권 말기의 2016년 총선에선 1년 동안 반박-비박-친박-진박 감별이란 초등생 수준의 코미디를 펼치다 패배했다. 비박의 당 대표가 옥새를 들고 영도다리에 선 사진으로 선거는 끝이었다. 2004년 총선 직전엔 제도권의 이단아였던 노무현에 대한 증오가 당을 지배했다. “탄핵하면 온 국민이 반길 것”이라는 집단의 최면과 광기에 빠져들었다. 깨어 보니 과반을 내준 참패였다. 진보도 강성 좌파로 망해가지만 보수 역시 극우 강경의 피리 부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독(毒)이 되는 길? 이런 맹목적 충성과 집단 최면이다. 윤핵관들의 표몰이와 위원장 기강잡기의 ‘구시대’로 얼룩진다면 총선은 기약이 없다. 공천 거래 등의 폭로전이야말로 최악일 터다. 크고 작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2선 후퇴, 백의종군”을 외쳤던 윤핵관들 아니던가. UAE의 300억 달러 투자 유치, 노조 개혁, 탈원전·부동산 정책의 정상화 등 대통령의 고군분투를 여당의 분란과 퇴행으로 뒤덮게 되면 안 하느니만 못한 전당대회다.

약(藥)이 되는 길? 시대와 함께 가는 새로운 보수의 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늘 국민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국민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보수정당인 영국 보수당의 개혁 선언문이다. 기업 투자 활성화, 규제의 축소, 공공지출 삭감과 세금 감면, 자유시장의 확대, 폐쇄적 노조의 개혁, 포퓰리즘의 추방 등이  보수가 국민에게 약속해야 할 기회다. 복지 확대와 보수가 양립할 길도 찾아야 한다. 이미 노동·연금·교육 개혁의 역사적 과제를 선언한 여권이 아닌가. 이준석 대표의 퇴장으로 사그라든 청년층의 활발한 보수정치 참여, 충원 역시 대한민국 보수의 과제여야 한다. 작은 완장 다툼일랑 넘어서 달라. 새로운 개혁적 보수의 길을 가겠다는 약속과 비전의 열띤 경쟁을 기대한다. 그게 정통 보수의 전당대회여야 한다.

글=최훈 주필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