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차이나 오병상의 코멘터리

핵무장 선동하는 전쟁공포와 파시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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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솔레다르 인근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그라드 다연장 로켓 발사기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솔레다르 인근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그라드 다연장 로켓 발사기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모습. AP=연합뉴스

1. 한국갤럽이 30일 ‘독자적 핵개발’ 찬성여론이 76.6%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갤럽이 최종현학술원 의뢰로 전화면접조사한 결과입니다. 이는 갤럽의 2017년 문재인 정부 당시 조사(9월 10일)결과 ‘핵무장 찬성’60%보다 훨씬 높습니다. 당시는 북한이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한 초대형 6차 핵실험(9월3일) 직후였음을 감안하면 현재의 핵무장 여론이 더 심각해 보입니다.

2. 몇 항목을 함께 보면 여론은 더 명확해집니다.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77.6%.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핵억지력 행사할 것인가’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가 48.7%로 ‘그렇다’ 51.3%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한국의 핵개발 능력이 ‘있다’는 응답도 72.4%입니다.

3. 민심은 단순명료합니다.
‘북한 비핵화는 기대할 수 없고, 미국의 핵우산도 못미덥고, 우리는 핵개발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까, 자체 핵무장을 해야한다.’

4. 이런 민심을 불러온 배경은 전쟁의 공포입니다.
첫째 배경은 북핵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 평화적 해결의 기대를 접었습니다. 북한은 미국 본토까지 공격가능한 미사일을 곧 보유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경우 ‘미국이 과연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하고 서울을 보호하겠느냐’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미국의 핵억지력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습니다.

5. 둘째 배경은 중국입니다.
중국은 대만을 무력통합하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해왔습니다. 미국은 참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경우 일본은 물론 한국까지 전화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의 주한미군 선제 타격, 북한의 틈새 도발도 우려됩니다.

6. 셋째 배경은 러시아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최초의 전쟁입니다. 보수우파들은 ‘우크라이나가 독립 당시 소련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로 넘겨주었기 때문에 침공당했다’고 주장합니다. 핵보유국이면 침공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반대로 핵보유국 러시아는 언제든 주변국을 침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짐작하게 됩니다.

7. 민심이 불안해지면 이에 편승하는 선동정치가 나타납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30일 ‘(핵무장하면) 자주국방이 가능해진다. 북핵의 노예에서 벗어나게 된다’며 ‘미국으로서도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재해줄 수 있는 새로운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미국 설득논리까지 내놓았습니다. 전형적인 강경보수우파 목소리입니다.

8. 대통령까지 비슷한 발언을 할 정도로 보수민심은 심각합니다.
지난 11일 국방부 업무보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핵)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은 2021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홍준표의 핵무장론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다’며 반대했습니다.

9. 대통령실은 다음날인 12일 발언취지를 해명했습니다.
‘국군통수권자의 의지를 분명히 한 말이다…핵확산금지조약 준수한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다.’
그게 정답입니다. 전쟁의 공포가 엄습하더라도 정치지도자라면 냉철한 판단으로 민심을 다독거려야 합니다. 불안을 선동하는 정치는 파시즘입니다.
 〈칼럼니스트〉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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