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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엔, 尹정부 첫 인권 지적…"학생인권조례 폐지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엔의 인권 주무 조직인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최근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서한을 보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새 교육 과정에서 ‘성평등’과 ‘성소수자’ 용어를 빼기로 확정한 데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유엔이 정부·지방 의회 차원에서 추진되는 사안에 대해 우려 서한을 보낸 건 처음이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8월 18일 오전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 서명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8월 18일 오전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 서명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OHCHR 홈페이지에 따르면 파리다 샤히드 교육권 관련 특별보고관 등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 4명은 지난 25일자로 한국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서울시의회와 충청남도의회에서 추진되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대해 한국 내에서 제기되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할 경우 성적 지향성, 성 정체성 관련 차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할 여력이 줄어들 수 있고 이는 국제적인 인권 기준에 반하는 처사이므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 다른 지자체에서도 줄줄이 폐지 움직임이 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보고관들은 또 "최근 한국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이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한다고 정부는 판단하는지, 그렇다면 근거는 무엇인지, 향후 차별에 노출될 수 있는 잠재적 희생자는 어떻게 보호할지 정부가 답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엔의 서한을 받아든 각 정부는 입장을 담아 회신해야 하고, 서한과 정부의 답변 모두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서울 등 일부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과 교육부의 지난해 11월 교육과정 개정 관련 유엔 특별보고관이 지난 25일 한국 정부에 보낸 서한. OHCHR 홈페이지 캡쳐.

서울 등 일부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과 교육부의 지난해 11월 교육과정 개정 관련 유엔 특별보고관이 지난 25일 한국 정부에 보낸 서한. OHCHR 홈페이지 캡쳐.

2012년 제정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성별과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학생들을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두발과 복장 규제, 체벌, 일괄적 소지품 검사, 강제 야간자율학습 등을 금지했고, 학교가 학생에게 종교 과목 수강이나 종교 행사 참여를 강제할 수 없도록 했다.

이러한 학생인권조례와 관련 그간 "학생 지도에 대한 학교의 재량권을 박탈하는 처사"라는 논란이 꾸준히 일었고, 지난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는 6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폐지 청구인 명부를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할 수 있고, 추락한 교권을 향상시켜야 한다" 등 이유였다.

현재 청구 심의를 통과한 인권조례는 서울시의회가 가결하면 폐지 수순을 밟는다. 현재로선 조례 폐지에 찬성하는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폐지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이어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들은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2024년부터 순차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역사 과목에 ‘성평등’과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삭제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국제 인권 기준에 나타난 교육권과 건강권에 반하는 처사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1990년 가입해 당사국인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사회권 규약)'의 교육권, 건강권 등 조항을 제시하며 정부 결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8월 폐지 청구 서명 제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 관계자들이 지난해 8월 폐지 청구 서명 제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날 OHCHR 홈페이지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후 유엔으로부터 총 4건의 인권 관련 서한을 받아들었지만, 앞선 3건의 서한의 경우 2015년 SK건설이 시공했던 라오스 댐 사고,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1년 추진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3080 플러스' 등 과거 정부 관련 사안이거나 난민에 대한 처우 문제 전반을 다룬 내용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인권 정책 관련 유엔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선 문재인 정부에선 2017년 5월부터 5년동안 유엔으로부터 20여건의 인권 지적 서한을 수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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