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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바닥에 아홉 개의 조각....미술관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 

마우리치오 카텔란,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크기, 사진 김경태. [사진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크기, 사진 김경태. [사진 리움미술관]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붉은색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아홉 개의 조각 작품. 흰 천으로 얼굴까지 덮은 모습이 눈에 익숙하다.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어디서 일어난 사건인지 알 순 없지만 어딘가에서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아챌 수 있다.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 #"현대미술계 가장 논쟁적인 작가" #관람객들 깜짝 놀라게하는 작품들 #대표작 '모두' '우리' 등 38점 공개 # 블랙 유머로 사회 가치 체계 도전

이것은 31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전시를 여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2)의 여러 작품 중 하나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답게 관람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들이 전시장 곳곳에 놓였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이 가장 충격적이다.

제목은 '모두'이다. 리움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작 선정은 1년 전에 모두 확정됐다"며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것은 스크린을 통해 반복적으로 송출되는 전 세계 사건사고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움미술관 측은 "아홉 개의 얼굴 없는 조각은 기념비에 자주 쓰이는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며 "작품은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라고 설명했다. "보는 이 각자에게 깊이 새겨진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게 작가의 의도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리움 측은 "섬세하고 현실적인 천의 주름 표현은 18세기 이탈리아 예술가 쥬세페 산 마르티노의 '베일을 쓴 그리스도'처럼 숭고한 존재감을 전하다"고 덧붙였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아홉 번째 시간, 1999,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김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사진 김경태. [사진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아홉 번째 시간, 1999,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김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사진 김경태. [사진 리움미술관]

또 다른 충격적인 작품은 거대한 돌(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의 모습을 재현한 조각 작품 '아홉 번째 시간'이다. 가느다란 십자가 지팡이를 쥔 채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다. 권위를 상징하는 종교적 지도자를 이토록 나약하게 묘사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1999년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장소와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일으켜왔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 부관장은 "'아홉 번째 시간'은 특정 종교나 맥락을 초월해 권위와 억압에 대한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2019, 생 바나나, 덕테이프, 가변크기, 사진 김경태. [사진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2019, 생 바나나, 덕테이프, 가변크기, 사진 김경태. [사진 리움미술관]

다음엔 전시장 벽에 테이프로 붙어 있는 바나나 한 개다. 제목이 '코미디언'이다. 이 작품은 2019년 12월 세계적인 아트페어닌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처음 등장했다. 바나나 한 개를 예술가의 지시에 따라 벽에 붙인 이 작품이 12만 달러(약 1억원)에 판매돼 화제를 모았다. 한 작가가 퍼포먼스로 바나나를 떼어 먹어버렸는가 하면, 다시 새 바나나로 교체되고 이걸 보기 위해 관람객이 몰려들어 갤러리는 작품을 내리고 마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리움 측은 "이 작품은 점차 썩어갈 운명인 바나나가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플래티넘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옷, 신발, 사진 김경태. [사진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플래티넘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옷, 신발, 사진 김경태. [사진 리움미술관]

마지막 문제의 작품은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 꿇은 히틀러의 얼굴을 한 작품 '그'(2001)이다. 멀리서 봤을 때 이 작품은 단정히 옷 입고 무릎 꿇은 소년의 뒷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가가 얼굴을 보는 순간 그게 히틀러의 얼굴임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왜 생전에 참회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그를 여기에 소년의 몸집 사이즈로 만들어 무릎 꿇게 했을까. 김 부관장은 "카텔란은 이미지를 통해 민감한 주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며 "그는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질문하고 토론하게 한다"고 말했다.

"나는 미술계 침입자"  

이처럼 카텔란의 작품은 모순을 드러내며 질문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군을 경험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자신을 스스로 '(미술계의)침입자' '이방인'으로
부른다.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의 개인전으로 조각, 설치, 벽화 등 주요 작품 총 38점을 전시한다. 작가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돋보이는 초기작뿐만 아니라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전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온 화제작을 고루 볼 수 있다.

김 부관장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하고도 심각한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비틀며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왔다"라며 "그는 작품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작품의 메시지를 해석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는 각자 보고 느낀 것을 말하며 토론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관람은 무료지만 2주 전부터 온라인 예약해야 한다. 전시는 7월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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