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조화가 곧 명가 재건…감독 이승엽의 두 마리 토끼

두산 이승엽 감독. 뉴스1

이승엽(47)이란 이름은 프로야구에서 크나큰 존재감을 지닌다. ‘국민타자’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영향력 덕분이다. KBO리그에선 MVP와 홈런왕만 5차례를 차지했고, 2003년에는 당시 기준으로 아시아 최다홈런(56개)을 터뜨리며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또, 각종 국제대회에선 매번 결정적인 몫을 해내면서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보다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낸 이승엽은 2017년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후 KBO 홍보대사와 해설위원으로만 활동하며 현장과는 잠시 멀어졌다. 간간이 지도자 복귀설이 나오곤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으로만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이승엽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불현듯이 현장으로 돌아왔다. 감독이라는 직함과 함께였다. 그것도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아닌, 두산 베어스 사령탑이라는 점에서 깜짝 발탁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렇게 현장으로 복귀한 감독 이승엽이 이제 새로운 야구 인생의 막을 연다. 이 감독은 29일 두산 선수단과 함께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의 전지훈련지로 떠났다. 사령탑 부임 후 처음 지휘하는 스프링캠프다.

이날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이 감독은 “은퇴 후 처음으로 긴 시간 집을 비우게 됐다. 이제야 다시 야구로 돌아왔다는 현실을 느끼고 있다. 짐을 챙기면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어 자신을 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팬들을 향해선 “아무래도 모처럼 공식적인 외부 일정이라 팬들께서 많이 환대해주시는 느낌이다. 몇몇 분들은 수년 전부터 봐왔던 팬들이긴 하다”고 특유의 재치를 뽐냈다.

이 감독은 두산 지휘봉을 잡으며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허니문 기간은 모두 끝났다. 이제는 사령탑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다. 특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영광을 뒤로하고 지난해 9위까지 내려앉은 두산의 명예회복을 위해선 새 사령탑의 카리스마 넘치는 통솔력이 절실하다.

이 감독은 “실전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그런 점에서 내 눈으로 선수들을 더 많이 확인하고 싶어서 예년보다 많은 인원을 데려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40일 정도 되는 전지훈련이지만, 50일에서 60일가량을 했다는 만족감이 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덧붙였다.

두산 이승엽 감독. 뉴스1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이 감독이 방점을 찍은 포인트는 신구 조화다. 마운드에선 왼손 투수 장원준을, 야수진에선 유격수 김재호를 콕 짚어 언급했다. 둘 모두 1985년생 최선참으로 기량은 전성기와 비교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1군 전지훈련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다. 명가 재건을 위해선 신구 조화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감독 이승엽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유독 ‘베테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꺼내든 이 감독은 “장원준은 129승을 거둔 선수다. 그 관록은 무시하지 못한다. 어떤 보직을 맡든 올 시즌 1군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야수진에선 유격수 포지션이 걱정이다. 김재호와 이유찬, 안재석이 있는데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김재호가 중심을 잡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포츠계에는 “스타는 명장이 될 수 없다”라는 속설이 있다. 선수로서 제 아무리 최고의 반열까지 도달했더라도, 감독으로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승엽이란 이름에도 이러한 주홍글씨가 따라붙지만, 이 감독은 “내가 경험이 없어서 그렇게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부딪혀보겠다. 올 시즌이 끝날 때 ‘그러한 생각이 잘못됐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준비하겠다. 모든 평가는 그때 받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와 함께 사령탑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