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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잘봐줘" 공직계 검은 청탁, 10대 공시생 죽음 내몰았다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뒤집힌 합격과 연필 자국, 10대 공시생 죽음 내몰았다

“블라인드 면접이 아니었어요. 이 면접 평정표에도 평가를 고쳤던 흔적이 있잖아요. 결과가 바뀐 것 같다고요. 제발, 면접위원 분들한테 한 번만 물어봐 주세요.”

 지난해 7월 27일 부산시교육청 주차장에서 숨진 10대 공시생 1주기 추모식이 진행됐다. 송봉근 기자

지난해 7월 27일 부산시교육청 주차장에서 숨진 10대 공시생 1주기 추모식이 진행됐다. 송봉근 기자

2021년 7월 26일 부산시교육청 민원실. 이모(당시 18)군이 교육청 공무원들에게 이같이 통사정했다. 그는 당시 치러진 부산시교육청 건축직 9급 공무원 임용시험에 응시했다. 이군은 3명을 뽑는 이 시험에서 필기 전형을 3등 성적으로 통과했다. 특성화고를 다니며 밤낮없이 공부에 매진한 결과였다.

그런데 면접 결과 탈락했다. 심지어 시스템 오류로 처음에는 ‘합격’으로 통보됐다가 이후 ‘불합격’으로 번복됐다. 단순 시스템 오류라는 게 부산시교육청 해명이다. 교육청을 방문한 그는 자신의 면접 평정표에서 가평정(연필로 등급을 매긴 뒤 면접관 논의 후 등급을 확정하는 관행) 흔적을 발견했다. 이는 지침 위반이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알려달라”는 이군 호소에 귀를 기울인 공무원은 없었다. 그는 이튿날 억울함을 호소하며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8개월만 드러난 진실 “간부 청탁에 평정 짬짜미”

이군이 응시했던 해당 채용 면접에서 실제 공무원들 간 ‘검은 청탁’이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면접위원을 맡은 공무원이 다른 위원들과 짜고 청탁받은 응시생에게 좋은 평가를 몰아준 사실도 1년 6개월 만에 확인됐다.

부산지법 형사10단독 김병진 판사는 30일 공무상 기밀누설 등 혐의로 기소된 부산시교육청 사무관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21년 7월 채용 전형이 진행되던 당시 자신이 면접위원으로 위촉된 사실을 동료 직원 등에게 공공연히 알리고, 부산시교육청 간부를 지낸 초등학교 교장 B씨로부터 “사위가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청탁을 받아 실제 해당 응시생이 합격할 수 있도록 좋은 평점을 몰아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8월 8일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이 교육청에서 임용과정 개선책을 발표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8월 8일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이 교육청에서 임용과정 개선책을 발표했다. 중앙포토

조별로 치러진 당시 면접 전형에서 A씨와 함께 면접에 들어간 다른 위원은 모두 2명이다. 이들은 각각 부산시와 우체국 소속의 외부 면접위원이었다. A씨는 면접에 앞서 청탁받은 B씨 사위의 인적사항을 확인한 것은 물론 미리 면접 문항을 귀띔했고, 실제 관련 질문을 던져 B씨 사위가 돋보일 수 있도록 해줬다.

면접이 시작되기에 앞서 다른 위원들에게 가평정을 먼저 제안한 것도 A씨였다. 외부 위원들은 대체로 A씨 제안에 따랐다. 숨진 이군(필기시험 3등)과 청탁 대상인 B씨 사위(5등)는 비록 다른 조에서 면접을 봤지만, 이 같은 부당행위 결과 B씨 사위에게 순위가 밀린 이군은 결국 탈락했다. B씨 사위는 최종 합격했지만, 합격 관련 서류 제출 등에 응하지 않아 임용되지는 않았다.

김 판사는 “처음부터 다른 위원에게 가평정을 제안해 의도적으로 특정 응시생에게 유리한 질문을 했다”며 “다른 위원들과 최종 평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해당 응시생에게 우수 평정을 줘 합격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판시했다. 지방공무원 임용령이 규정하는 ‘우수등급제’에 따라 면접위원 과반에 모든 항목 평정을 ‘상(上)’으로 받는 이른바 ‘올(all)상’ 응시생은 필기점수와 무관하게 합격이 보장된다.

김 판사는 “피고인은 특정 응시생을 합격시킬 의사를 가지고 면접 전후 과정에서 필기시험 결과와 무관하게 해당 응시생이 합격할 수 있도록 했다. 면접위원의 의사가 결과에 절대적으로 반영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비정상적인 면접 평가가 이뤄진 것”이라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김석준 교육감, 공식 발표 전 B씨에 “합격 축하” 통보

지난해 5월 12일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후보가 부산 연제구 부산시선관위에서 후보자 등록을 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5월 12일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후보가 부산 연제구 부산시선관위에서 후보자 등록을 했다. 중앙포토

문제의 채용이 진행되던 당시 부산시교육청 임용 책임자이던 김석준 전 교육감의 부적절한 처신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식 발표가 이뤄지기 전 청탁 당사자인 B씨에게 “사위 합격을 축하한다”는 취지의 연락을 취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숨진 공시생 父 “제도개선 좋지만, 억울함 풀어줘야죠”

이날 법정에선 숨진 이군의 아버지 이동현씨가 A씨 선고를 지켜봤다. 그는 “검찰 구형보다 형량이 낮은 것은 아쉽지만, A씨가 지은 죄(공소사실)가 법정에서 모두 인정돼 다행”이라고 했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해 8월부터 이군 면접에서 문제가 된 ‘우수등급제’ 폐지를 위해 교육부 등 관련 부처와 논의중이다. 필기시험 이외에도 창의성 등이 인정되면 채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지만, 이군 사례를 계기로 이 제도가 청탁 등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난 게 논의 계기가 됐다. 비록 완전 폐지는 아니더라도 공무원 비위나 실수로 불합격한 응시생을 구제하는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최소한의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들이 죽은 사건의 책임을 밝히는 게 먼저”라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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