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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5) 내가 천하를 배반할지언정 천하가 나를 배반하게 두지는 않겠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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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는 동탁과 일촉즉발의 난리를 벌인 후, 절(節)을 내던지고 자신의 본거지인 기주로 갔습니다. 화가 안 풀린 동탁은 원소의 숙부인 원외에게 진류왕 협을 황제로 세우는 것에 대해 협박하듯 묻습니다. 원외는 동탁의 의견에 무조건 따릅니다. 동탁은 뭇 신하들을 향해 더욱 큰소리로 외칩니다.

“감히 국가 중대사를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군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아무리 망해가는 왕조이지만 아직 법도는 있을 터인데 동탁은 ‘군법(軍法)’을 내세웁니다. 예나 지금이나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는 자들에게는 군법보다 편리한 법령은 없습니다. 자신의 말이 곧 법이니까요.

동탁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탁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탁은 즉각 황제 교체를 단행합니다. 문무백관을 모아놓고 칼을 휘두르며 9살인 진류왕을 황제로 세웁니다. 이 황제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입니다. 동탁은 스스로 상국(相國)이 되어 권력을 장악합니다. 모든 신하는 황제를 알현할 때 세 가지를 법도를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동탁은 이러한 법도를 지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바로 찬배불명(贊拜不名·황제를 뵐 때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입조불추(入朝不趨·조정에 들어가서도 빨리 걷지 않는다), 검리상전(劍履上展·검을 차고 신을 신은 채로 어전에 오른다)입니다. 동탁이 실질적인 황제인 셈입니다.

소제는 6개월간 황제 자리에 앉았다가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되어 하태후, 그리고 당비와 함께 영안궁(永安宮)에 갇힙니다. 슬픈 나날을 보내던 홍농왕은 제비 한 쌍을 보고 자신의 처지를 담은 시 한 수를 지었습니다. 이 시는 즉각 동탁에게 전해졌습니다. 동탁은 “원망의 시를 지었으니 죽일 명분이 생겼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태후는 동생 하진이 무모하여 역적 놈들을 끌어들인 것을 통탄하며 죽었고, 홍농왕과 당비는 작별의 시를 한 수씩 주고받은 후 살해되었습니다. 당비의 애절한 이별가를 살펴보겠습니다.

皇天將崩兮后土頹
하늘이 무너짐이여, 땅 또한 꺼지려 하네

身爲帝姬兮命不隨
몸은 황제의 비가 됨이여, 목숨이 일찍 꺾일 뿐이네.

生死異路兮從此畢
죽음과 삶의 길이 다름이여, 이렇게 어그러지려 하니

奈何煢速兮心中悲
어찌타 홀로 외롭게 됨이여, 마음 가득 슬픔뿐이어라.

이제 동탁은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황궁에 들어가 궁녀들을 간음하고 용상(龍床)에서 잤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봄이 다가와 토지신께 풍년과 전염병 예방을 비는 마을을 급습해 장정들의 목을 베고 여자와 재물을 수레에 싣고 와서는 오히려 도적을 죽였다며 큰소리치고, 여자와 재물은 장졸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야말로 무도막심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습니다.

동탁의 공포정치가 극에 이르자 월기교위(越騎校尉) 오부가 동탁을 죽이려다가 실패했습니다. 동탁은 더욱 호위를 강화하고 감시합니다. 사도(司徒) 왕윤이 생일을 빙자하여 옛 신하들을 모아놓고 한탄하자 효기교위(驍騎校尉) 조조가 동탁을 주살하겠다고 나섭니다. 이에 왕윤은 조조에게 칠보단도(七寶短刀)를 주며 성공을 기원합니다.

조조가 동탁을 만나 죽이려 했지만, 거울을 보고 있던 동탁에게 들켜 실패합니다. 조조는 임기응변으로 동탁에게 칠보단도를 바치고 여포가 가져온 말을 타고 줄행랑을 칩니다. 동탁은 즉각 수배령을 내리고 조조를 잡는 자에게는 황금 천 냥과 만호후(萬戶侯)에 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밤낮으로 도망치던 조조는 중모현(中牟縣)에 이르러 진궁에게 붙잡혔습니다. 진궁이 조조의 죄를 캐묻자 조조는 “제비와 참새가 어찌 고니의 큰 뜻을 알겠느냐?(燕雀安知鴻鵠志哉)”며 일갈합니다. 현령인 진궁도 뜻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조의 비범함을 간파한 진궁은 오히려 자신의 관직을 버리고 조조와 함께 도망칩니다.

진궁 [출처=예슝(葉雄) 화백]

진궁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는 사흘을 달려 성고(成皐)에 이르자 부친과 의형제를 맺은 여백사를 찾아갔습니다. 여백사는 반갑게 맞이하고 식솔들에게는 돼지를 잡으라고 하고 자신은 술을 가지러 갑니다. 그런데 의심 많기로 으뜸인 조조가 ‘묶어 놓고 죽이는 것이 좋겠다’는 식솔들의 말을 엿듣고는 진궁과 함께 식솔 8명을 몰살합니다. 하지만 곧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고는 급히 집을 나서는데 여백사가 술과 안줏거리를 들고 왔습니다. 조조가 아무것도 모르는 여백사마저도 죽이자 진궁이 놀란 채 질책합니다. 그러자 조조가 말합니다.

“차라리 내가 천하의 사람들을 배반할지언정 천하의 사람들이 나를 배반하게 두지는 않겠소.”

진궁은 조조의 황당한 말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는 밤이 깊어 객점에서 잠자리에 들자 조조의 행동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리 같은 심보를 가진 놈’을 믿고 따라온 자신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모종강은 촉한 정통론에 근거한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재편집하면서 ‘조조악인론’을 강화했습니다. 그러한 모종강이 조조가 여백사 일가족을 살해한 것에 대해 어떻게 평했을까요. 조조가 여백사 일가족을 죽이고 한 말에 대해 모종강은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여백사를 죽이는 조조 [출처=예슝(葉雄) 화백]

여백사를 죽이는 조조 [출처=예슝(葉雄) 화백]

‘누구나 이 대목에 이르면 욕을 하고 꾸짖거나 죽이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조조의 그러한 솔직함이 바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독자에게 묻겠다. 누가 이런 마음을 갖지 않았다고 할 수 있고 또 누가 당당히 나서서 이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도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뒤집어 ‘차라리 남이 나를 배반할지언정 내가 남을 배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들이 하는 짓을 보면 말과는 정반대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까지 속이며 조조가 한 말처럼 비열하게 행동한다. 조조의 생각과 말이 모두 소인배의 짓이라면 이들은 입으로만 옳은 말을 하고 생각은 그른 사람들이다. 때문에 조조의 발뒤꿈치도 따를 수 없는 자들이다. 나는 그래서 조조의 솔직한 점이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공자는 인물을 평가할 때 군자(君子), 광자(狂者), 견자(狷者), 향원(鄕愿)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향원’만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맹자는 공자의 말에 덧붙여 설명하기를, “향원의 말은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입만 열면 옛 성인을 운운한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말은 언제나 번지르르하게 하고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는 위선자인 것입니다. 모종강도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들을 극도로 혐오하였기 때문에 간교한 조조에 빗대어 더 나쁜 사람들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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