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어 대신 아랍어"…배울 엄두도 못 냈던 이 언어가 뜨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콘래드 아부다비 에티하드타워에서 열린 동행 경제인과의 만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페이스북,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콘래드 아부다비 에티하드타워에서 열린 동행 경제인과의 만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페이스북, 뉴스1

“2022년까지 항상 새해 목표는 영어 공부였거든요. 올해는 아랍어 공부로 바뀌었습니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김 모(38) 씨는 이번 달 초부터 어학원에서 ‘아랍어 초급’ 수업을 듣고 있다. 김씨가 재직하는 회사에서 중동 관련 사업이 늘어난 게 계기가 됐다. 김 씨는 “중동 국가는 특히 아랍어를 할 줄 알면 훨씬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며 “아예 배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언어였는데 앞을 내다봤을 때 지금부터라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제2의 중동붐’에 아랍어 학습 수요 크게 늘어

지난해 말부터 한국과 중동국가 간 경제 협력이 빠르게, 큰 규모로 전개되면서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방한해 사우디 미래도시 개발사업인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기로 하는 등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 협약이 체결됐다. 지난 14일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첫 순방지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300억 달러(약 37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 UAE 부통령 겸 총리(두바이 통치자)와 환담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제공,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 UAE 부통령 겸 총리(두바이 통치자)와 환담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제공, 뉴스1

중동국가와 경제 교류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UAE 아부다비에서 진행된 ‘석유가스전시회’엔 국내 중소 제조업체 30곳이 참여했다. 2019년 참여기업(10곳)보다 세 배 많은 규모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나흘간 열린 전시회 동안 약 2만 명의 바이어가 한국관을 방문해 1530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중동국가와 교류가 많아지면서 아랍어 학습 수요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통역 업무를 하며 10년 이상 아랍어 강의를 해 온 방성아 통역사는 “확실히 지난해 말부터 아랍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났고, 수강생의 학습 목적도 달라진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기존에는 주로 아랍어과 전공 대학생들이 주로 학원을 찾았는데, 지난해부터는 사업에 도움이 되거나 취미로 아랍어를 배우겠다는 일반인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방 통역사는 “사업 때문에 중동에 파견될 것 같다며 배우는 사람부터, 여행 갈 때 멋있어 보이기 위해 배우겠다는 사람까지 본인만의 동기를 가진 사람들의 학습 문의가 늘었다”고 했다.

아랍어·중동학 경쟁률도 상승…중동 취·창업 준비하는 학생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대학의 아랍어과·중동지역학 입시 경쟁률도 높아졌다. 올해 단국대 중동학전공 정시에는 13명 모집에 91명이 지원(7대 1)했는데, 2020년 39명이 지원(3.55대 1)한 것보다 크게 늘었다. 한국외대 아랍어과 정시 경쟁률도 4.75대 1을 기록, 3년 전(3.57대 1)보다 상승했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외국어 학과의 경우 우리나라와의 경제·문화 교류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경쟁률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아랍어과 경쟁률뿐 아니라 입결(입시 결과)도 과거보다 많이 높아졌다”고 했다.

아랍어과·중동지역학 학부생들이 전공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과거엔 아랍어과로 입학했지만, 제2전공으로 다른 학문을 선택해 그 분야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1전공을 살려 취·창업을 하려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민혜성 한국외대 아랍어과 학생회장은 “최근 동기들을 보면 저를 포함해 중동지역과 연계된 창업을 구상하거나, 기업에서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아랍어와 중동지역학을 배웠다는 장점을 100% 활용해 취업하는 학생들도 많다”며 “앞으로 중동국가와 교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전공자들이 진출할 분야도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같은 대학의 정유진(21학번)씨는 “중동국가들도 한국에서의 아랍어 교육 및 한국어·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런 관심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학술 교류나 연구 지원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동국 대하는 태도 달라져…“전문가 육성 시스템 갖춰야”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K-MOOC)에 올라온 부산외대의 초급 아랍어 강의 중 일부. 사진 K-MOOC 캡쳐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K-MOOC)에 올라온 부산외대의 초급 아랍어 강의 중 일부. 사진 K-MOOC 캡쳐

중동국가와 교류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최근 특히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동국가의 리더십·문화 변화’를 꼽았다. 윤은경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는 “중동의 젊은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변해 기존보다 더 개방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우리나라와의 협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변화되고 있다”고 했다. 과거 주로 건설·석유 에너지 산업에 교류가 국한돼 있었다면, 최근에는 신재생에너지·보건의료·식량안보부터 엔터테인먼트·관광산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류의 인기로 중동국가 내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데다가, 국내에서도 중동국가의 개방화된 이미지가 많이 소개되며 ‘폐쇄적 이슬람 문화’라는 편견이 사라진 것도 한몫했다.

김정명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는 아랍어가 저평가된 경향성이 있고, 아랍어·중동지역학과를 갖춘 대학 자체가 5곳 정도로 많지 않다”며 “비인기 언어학과의 경우 다른 과로 흡수되거나 없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중동국가와의 교류 규모를 고려한다면 국내에 아랍어·중동지역학 인재들이 어느 정도 양성·배출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