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승욱의 시시각각

대통령을 오판한 두 사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논설위원

서승욱 논설위원

 솔로몬 재판 진짜 엄마의 용기 있는 불출마. '나경원 사태'의 종점은 이런 결말이었다. 나 전 의원은 지난 25일 회견에서 자신의 결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 출마가 분열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고 극도로 혼란스럽고 국민께 안 좋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솔로몬 재판 진짜 엄마의 심정으로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출마 결정은 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출마 결정은 용기가 필요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3 업무보고(통일,행안,보훈.인사)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2023 업무보고(통일,행안,보훈.인사)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불출마가 선당후사의 결단과 용기의 결과물이란 설명이다. 이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믿는 사람들은 불출마에 따른 정치적 타격을 감수하겠다는 나 전 의원의 결정을 높게 평가한다. 반대로 믿지 않는 이들 중엔 민주당 출신 신경민 전 의원의 표현이 재미있다. TV에 출연한 그는 '용기 있는 불출마'란 설명이 "뜨거운 아이스커피"란 말처럼 형용모순이라고 했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는 윤석열 대통령과 척지기 두려워, 윤심(尹心)이 두려워 내린 용기 없는 결정이란 주장이다. 용기 있는 출마는 있어도 용기 있는 불출마는 말이 안 된다고도 했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 결단'엔 다양한 평가가 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건 '나경원 사태'가 나 전 의원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심 기대했던 나경원의 불출마
멋쩍은 이재명의 영수회담 제안
적당한 타협 없는 대통령 스타일

당내 친윤계는 애초에 다른 특정 후보를 밀고 있었다. 지난 5일 오전 '윤핵관 맏형' 권성동 의원이 갑작스럽게 불출마를 선언했다. 세 시간 뒤 친윤계 핵심들이 모여 그 특정 후보에게만 마이크를 허락했던 송파을 당협 신년 인사회는 윤심의 결정적 장면이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그날도 "당권에 도전하게 된다면 당연히 저출산위 부위원장직은 내려놔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그 자리(국민의힘 대표)에서 더 크게 (윤 대통령을) 도와드릴 수 있지 않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윤심은 이미 굳어졌는데 이 베테랑 정치인은 여전히 다른 기대감과 가능성을 피력했다. 윤심을 뒤집진 못해도 자신의 높은 지지율이라면 설득이나 타협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과거의 대통령들이라면 그랬을 수 있다. 중간쯤에서 다른 답을 찾았을 수도 있다. 나 전 의원을 만나 주고, "당신도 열심히 뛰어 보라"고 격려하는, 좋은 게 좋은 그림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정반대였다. 만나주지도 않았고, 장관급 두 자리에서 나 전 의원을 해임했다. 대통령비서실장까지 나서 "해임은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도장을 쾅 찍었다. 나 전 의원에겐 망치로 맞은 정도가 아니라 핵 공격 수준의 충격이었으리라. 결국 '용기 있는 불출마'든, '뜨거운 아이스커피'든 나 전 의원은 여기서 물러섰다.

'윤석열 스타일'을 오판한 이는 또 있다. 대선에서 맞붙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대선 패배 뒤 서둘러 링으로 돌아왔다. 연고 없는 지역의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사법 리스크' 우려 속에서도 야당 대표에 곧바로 등극했다. 그리고 영수회담을 연거푸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에선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이 대표로선 영수회담을 통해 국정의 카운터파트로 인정받는 자연스러운 투샷이 연출되길 바랐겠지만, 이런 일은 현실에 없었다. 투샷은커녕 여당 대표를 포함한 다자회동조차 없었다. 이 대표와의 만남이 검찰 수사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듯하다.

용산 대통령실에선 "검찰총장 때 보지 않았느냐. 윤 대통령에게 적당한 타협이란 없는데, 이 대표나 나 전 의원이 그걸 몰라 당황했을 것"(핵심 참모)이란 해석이 나온다. 사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는 스타일은 국가 지도자에게 강점도, 약점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적당히 타협했다면 윤 대통령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윤 대통령과 상대할 정치인들은 좋든, 싫든 기존 정치 문법에 없는 새 접근법을 연구해야지 싶다. 나경원, 이재명 케이스는 좋은 반면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