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강한 가족]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래 의학 구현”…고려대의료원의 새로운 10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3면

고려대의료원 기금사업

신종 감염병 대응책 마련하고
세계 인재 키울 장학금 조성 등
2028년까지 2000억 모금 계획

고려대의료원은 설립 100주년이 되는 2028년까지 2000억원 목표로 대규모 모금 캠페인을 진행한다. 인성욱 객원기자

고려대의료원은 설립 100주년이 되는 2028년까지 2000억원 목표로 대규모 모금 캠페인을 진행한다. 인성욱 객원기자

우리나라에 서양식 근대 의료기관이 생기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부터다. 하지만 이 시기 여성들은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유교 문화 속에 여성 환자가 외국인 남자 의사에게 벗은 몸을 내보이는 일을 수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료 선교사였던 로제타 홀(Rosetta Hall) 여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의사를 양성하는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했다. 1928년, 여성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기에 최초의 여의학교가 생긴 것이다. 이후 우석(友石) 김종익 선생은 당시 천문학적 금액이었던 ‘65만원’을 조선여자의학강습소에 유산으로 남겼다. 고려대의료원의 시작이다. 이 기부금을 통해 강습소는 1938년 의학전문학교로 승격됐다.

이처럼 고려대의료원은 기부의 역사로 세워진 의료기관이다. 김종익 선생의 기부를 발판으로 현재의 고려대안암병원이 탄생했다. 65만원이 만든 기적이었다. 의료원 산하 구로·안산 병원은 지역사회 봉사병원으로 승인받아 독일의 차관으로 설립됐다. 당시 의료취약지구였던 구로산업공단과 공업지역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안산에 터를 잡고 수많은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려대 의대 교우들은 십시일반 기부금을 모아 현 의과대학 건물과 의학도서관을 설립했다. 김신곤(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고려대의료원 기금사업본부장은 “우석 선생의 숭고한 기부를 시작으로 고려대의료원은 의료 약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이제 의료원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전초기지를 구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연구·기반·교육 분야 대규모 모금 전개

2028년은 고려대의료원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의료원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류를 위한 미래 의학을 구현하는 일’을 새로운 100년의 꿈으로 설정했다. 2028년까지 미래 의학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대규모 모금 캠페인을 전개할 방침이다. 목표 금액은 2000억원이다. 이를 위해 2019년 기금사업본부가 출범했다. 의료원은 기금사업본부를 통해 조직적인 모금 활동을 개시하며 현재까지 8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모았다. 김영훈 고려대의료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특정 소수가 주도하는 것보다는 많은 이들이 기부에 동참해야 꿈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며 “고려대의료원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전방위적인 모금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료원이 이번 캠페인을 통해 조성하는 기금은 크게 연구·기반·교육 세 분야로 나뉜다. 첫째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류를 위한 ‘미래 의학 선도기금’이다. 이는 융복합연구원을 구축해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미래 의학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된다. 둘째는 공존하며 상생하는 세상을 위한 ‘사회혁신 공헌기금’이다.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K-메디컬’로 국제 보건사업을 선도하는 게 목적이다. 마지막은 뉴노멀(New Normal)을 개척하는 ‘세계인재 육성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면서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에 힘을 보탤 방침이다. 김신곤 교수는 “의료원은 자유·정의·진리를 의미하는 세 가지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운 100년의 의학을 창조할 대대적인 모금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의료원의 기부 활동에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 정신이 담겨 있다. 필란트로피는 ‘사랑한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필로(Philo)와 ‘사람’을 의미하는 엔트로피(Enthropy)가 합쳐진 단어다. 즉 박애와 자선을 통한 ‘인류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의료원의 발전을 도운 기부 행렬은 모두 필란트로피 정신이 이어진 발걸음이었다. 앞서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사는 한종섭(91)씨는 반평생 환자로서 고려대의료원과 인연을 맺었다. 한씨는 한국전쟁 당시 가족을 잃고 월남해 실 공장을 운영하며 6남매를 키워낸 인물이다.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이 거주하던 안암동 건물을 처분한 대금을 의료원에 전달했다. 의학 발전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씨는 “고려대병원이 나쁜 병을 모두 없애주면 좋겠다”고 말하며 선행을 보여줬다.

투명성 높여 의료계 나눔 문화 확산

의료원은 이러한 필란트로피 정신을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매년 11월 11일을 필란트로피의 날로 정하고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 중이다. 김 교수는 “나눔이 울림이 되고 울림이 공명이 되는 필란트로피 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며 “기부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에 투자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의료원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교우와 기업인, 환자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꾸준한 기부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2021년 진행한 ‘Again 65 캠페인’은 가장 성공적인 기금 활동으로 평가받는다. 캠페인 기간 목표 금액이었던

65억원을 훌쩍 넘긴 260억원이 모였다. 단 100일 만에 이뤄낸 성과다. 이는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와 청담 고영캠퍼스를 조성하는 근간이 됐다.

메디사이언스파크와 고영캠퍼스는 고려대의료원의 100년 목표를 수행할 전초기지로 꼽힌다. 그중 메디사이언스파크는 최첨단 헬스케어 융합 플랫폼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곳에선 백신과 신약 개발 등 감염병 관련 연구가 이뤄진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과 동화그룹 승명호 회장의 통 큰 기부로 연구기지가 마련됐다. 우수의약품 제조 GMP 시설과 32개의 신약 개발 연구소 등이 입주해 의료원과 협업을 이어간다.

의료원은 기부금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 기부 문화를 확산하겠다는 계획이다. 기금사업본부는 정기적으로 기금운용백서를 발간해 사용처를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부금 추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기부관리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이 시스템이 마련되면 기부자는 언제든 자신의 기부 내역과 사용처를 확인할 수 있다. 기부자 예우에도 신경 써서 선순환을 유도하고, 유산 기부 등 기부자 요구에 맞는 다양한 방식의 기부 활동도 활성화할 방침이다. 김 의료원장은 “우리의 목표는 기금 모금을 통한 외적 성장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모아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의료기관이 되는 것”이라며 “인류 사회 기여를 위한 기부 활동에 많은 사람이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