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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역할 커지는 공공의료, 보훈병원 인프라 활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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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기고 김춘관 중앙보훈병원 기획조정실장

지난해 이태원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중앙보훈병원 응급실에서 관련 환자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병원장의 지시가 있었고, 즉시 원내 재난 대응체계가 가동됐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이태원에서 이송된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 대비해 보건복지부는 권역 응급센터별로 재난의료지원팀을 운영 중이다. 중앙보훈병원 역시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있고 재난의료지원팀도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태원 현장에서 시민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을 때 현장 응급진료소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10·29 참사는 허울뿐인 재난 대응체계의 민낯과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비극이었다.

최근 필수의료 붕괴, 코로나 팬데믹, 지역 의료격차 확대 등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공공의료의 역할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역 완결형 필수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공공병원 설립이 논의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의료 자원이 한정된 만큼 이미 전국적으로 네트워크가 구축된 보훈병원의 인프라를 이용하는 것이 국가 차원에서도 효율적일 것이다.

보훈병원은 상급종합병원 역할을 하는 중앙보훈병원(서울)을 필두로 부산·광주·대구·대전·인천까지 총 6개 지역에서 각 지역 거점의 책임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보훈병원은 재활센터·요양병원·호스피스센터·보훈요양원 등의 의료·복지시설과 580여 개의 위탁병원을 통해 촘촘하고 전국적인 의료전달체계를 갖추고 있다.

보훈병원의 근본적 정체성은 ‘공공의료기관’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가재난 상황에서도 일선에서 대응하는 등 책임을 다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발생 이후 각 지역 보훈병원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서 7만여 명의 확진자를 치료했고, 10·29 참사 피해자의 정신과 상담 치료도 시작했다. 또한 제대 군인, 소방, 경찰, 법무공무원 등 국가사회 기여자를 위한 병원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민간의료기관은 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런 보훈병원에도 선결돼야 하는 문제가 있다. 보훈병원이 갖춘 완결형 의료전달체계의 인프라와 전국적 네트워크가 공공보건의료체계에 자연스럽게 융합되려면, 느슨해진 의료-복지-요양-재활 간의 연계를 단단히 묶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이 역할을 위해 6개 보훈병원과 2개 요양병원을 총괄 운영하는 ‘보훈의료원’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역할을 담당하는 중앙보훈병원을 중심으로 건강 복지안전망을 효과적으로 연계한다면 보훈병원의 인프라를 공공의료 강화에 십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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