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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살점 떨어진 좀비…그 기괴함에 끌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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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탄탄보: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불꽃과의 조우’, 2014, 리움미술관 소장. [사진 Takashi Murakami / Kaikai Kiki Co.,Ltd, 부산시립미술관]

‘탄탄보: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불꽃과의 조우’, 2014, 리움미술관 소장. [사진 Takashi Murakami / Kaikai Kiki Co.,Ltd, 부산시립미술관]

지난 26일 오후 2시 부산시립미술관 1층 대강당. 안경을 쓰고, 희끗희끗한 수염과 긴 머리의 60대 남자가 커다란 분홍색 헝겊 인형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일본의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61)다. 인사를 마치고 미술관 로비 설치작품 앞에 선 그는 자기 주변으로 모여든 카메라를 위해 연신 두 팔을 벌리고 다리 한쪽을 올리며 포즈를 취했다. 웃기고 기이한 작가다.

다카시의 작품 전반을 조명하는 회고전 ‘무라카미좀비’전이 26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막했다. 2013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린 전시 이후 10년 만의 한국 개인전이다. 미공개 초기작을 포함해 회화와 대형 조각, 설치, 영상 등 17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은 어린이를 위한 ‘유령의 집’을 갖춘 테마파크 같다. 상상 속에서나 봤음직 한 기괴한 모양의 캐릭터가 대형 캔버스를 꽉 채우고 있고, 거대한 도깨비 모양의 ‘붉은 요괴, 푸른 요괴’, 썩은 살점이 뚝뚝 떨어져간 모습의 ‘무라카미좀비’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는다.

동일본 대지진 겪으며 작품세계 변화

캐릭터 인형을 머리에 쓴 무라카미 다카시.

캐릭터 인형을 머리에 쓴 무라카미 다카시.

1962년생인 다카시는 전후 일본 애니메이션과 함께 성장했다. 10대에 ‘은하철도 999’와 ‘미래소년 코난’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1986년 도쿄 예술대학에 입학해 일본화를 전공(학·석·박사)했다. 평소 일본의 대중문화가 고급문화보다 더 우수한 일본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온 그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고급문화와 하위문화(서브컬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슈퍼플랫’(Superflat) 개념을 창안했다. 세계 미술계에서 이 전략이 통했다. 다카시의 피규어는 2008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70억원에 낙찰되고, 2021년 뉴욕 필립스 경매에선 2013년 작 대형 회화가 500만 달러에 판매됐을 정도다.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을 키워드로 구성한 본관 전시는 작가의 시그니처 캐릭터 ‘미스터 도브(DOB·도라에몽과 슈퍼소닉 캐릭터의 조합)’의 탄생에서 시작해 인생사의 덧없음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작품 세계의 변화를 조망한다.

다카시가 제작한 여러 요괴 캐릭터 중 하나.

다카시가 제작한 여러 요괴 캐릭터 중 하나.

‘귀여움’과 ‘기괴함’이 특징이었던 그의 작품세계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큰 변화를 겪었다. 전시 개막에 앞서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어릴 때 집안이 가난하고 힘들었다. 부모님 따라 신흥종교에 빠졌다가 20대 초반에 탈퇴한 후 종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고 개인사를 털어놨다. 그런데 “대지진 때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아이에게 ‘엄마가 별이 됐다’고 이웃 사람이 말해주는 장면을 방송으로 보며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는 “종교는 너무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이야기를 제공해 패닉을 진정시킬 수 있다. 그때부터 이야기가 있는 예술로 뭔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덧없음’ 섹션은 그렇게 변화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불교의 오백나한과 금강역사, 아미타 내영도 등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현란한 ‘무라카미 스타일’로 재현했다. 그는 요괴 등 기괴함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인간에겐 병, 재해, 전쟁 등 다양한 공포가 있다”며 “그 두려움을 실체화한 게 괴물이나 요괴”라고 말했다.

이우환 화백이 작가 섭외에 직접 나서

‘무라카미 플라워’ 설치작품.

‘무라카미 플라워’ 설치작품.

이번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다. 이우환(86) 화백이 나서 적극적으로 작가를 섭외해 선보이는 이 시리즈에선 앞서 안소니 곰리, 빌 비올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 세계적인 작가를 소개했다.

2022년 작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 작가가 바라보는 인류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현재를 ‘재난 상황’으로 표현했다.

2022년 작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 작가가 바라보는 인류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현재를 ‘재난 상황’으로 표현했다.

이 화백은 지난해 6월 다카시에게 보낸 손편지에 “님의 작품은 얼른 보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화려합니다. 그러나 다시 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 있어 지나칠 수 없습니다”고 썼다. 다카시는 “존경하는 이우환 선생님께서 이 전시에 초대해 주셨는데, 그 자체가 큰 영광이라 전혀 망설임 없이 초대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카시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은 ‘과연 이것도 미술일까?’라는 질문을 계속 하게 될 수 있다. 다카시는 1996년 회사 ‘히로폰 팩토리’를 설립해 2001년 ‘카이카이 키키’로 이름을 바꾸고, 실제 많은 직원과의 협업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미술 관련 상품을 개발해왔다. 다카시는 “나 스스로는 미술의 문턱을 낮추는 데 공헌했다고 생각하지만, 일각에선 좋지 않은 풍토를 퍼뜨렸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앞으로도 이런 미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관객에게 그 판단을 맡긴다”고 말했다.

전시는 3월 12일까지,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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