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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탈북작가 성폭행 보도는 허위"…1.3억 손해배상 판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MBC 스트레이트 당시 방송 예고 화면

MBC 스트레이트 당시 방송 예고 화면

2년 전 MBC가 탈북작가 장진성씨의 성폭행 의혹을 보도한 것은 허위이며,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부장 성지호)는 지난 27일 MBC에 “해당 방송을 삭제하고, 취재기자·제보자와 함께 장 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방송에서 또 다른 성폭력 가해자로 그려진 전모씨에게는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문제가 된 보도는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의 ‘유명 탈북작가 장진성, 그에게 당했다. 탈북여성의 폭로(2021년 1월 24일 방송)’와 ‘탈북작가 장진성 성폭력 의혹 2탄-침묵 깬 피해자들(2021년 2월 28일 방송)’이다. “유명한 탈북민 작가가 같은 탈북민 출신 대학생에게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당시 방송)”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MBC가 보도를 통해 ‘전씨가 승설향씨를 준강간하고, 장씨가 승설향의 나체사진을 이용해 승씨를 여러 차례 강간했다’는 사실의 존재를 암시해 적시했는데 이는 허위로 판단된다”고 했다. 승씨는 전씨와 장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며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방송에 나왔던 제보자다.

MBC 스트레이트 당시 방송 화면

MBC 스트레이트 당시 방송 화면

승씨는 방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승씨의 진술에 따르면 장씨의 성폭행은 그 뒤로도 계속됐습니다(홍신영 기자)” “탈북자 사회에서 장진성 씨가 가진 막강한 영향력은 승설향 씨를 4년 동안 괴롭히고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내레이션)” “승씨를 만나 상담했던 전문가는 진술의 신빙성이 높고 반드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내레이션)” 등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승씨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수사기관에서 장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했지만 문제의 나체사진이 나오지 않았고, 승씨가 강간당했다는 호텔이 어딘지 진술을 바꿨는데 두 곳은 각각 서울 논현동과 방이동으로 “혼동하기 어려울 만큼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도 장씨와 전씨의 성폭행 혐의 등에 대해 불송치 결정 및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도저히 강간의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는 표현도 썼다. 승씨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만남을 이어갔다’던 전씨에게 “장씨를 죽이기 위한 비리나 약점을 알려달라”며 협박한 내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승씨가 전씨에게 “나와의 관계를 와이프가 알면 좋지 않을 것” “나랑 동거하고 있는 사람이 중국에서 사람도 죽인다”고 한 것 등이 증거로 쓰였다.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은 개별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란 취지이지, 이처럼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서까지 용인하며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가볍게 믿으라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서부지법. 연합뉴스

서울서부지법. 연합뉴스

보도 자체는 탈북여성의 인권 문제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그 내용이 장씨와 전씨에게 치명적인 만큼 MBC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검증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MBC는 재판 과정에서 “장씨·전씨가 취재를 피했고 명확한 설명을 못 했기 때문에 승씨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취재에 응할지는 장씨·전씨의 자유이며, 취재를 거부했던 이유가 납득이 간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허위사실 보도로 원고들은 정상적인 가정·사회·경제활동을 하기 어렵게 됐고,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를 보게 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배상액 책정 배경을 밝혔다.

1억원이라는 손해배상액은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배상액으로는 큰 편이다. 장씨를 대리한 신현호 변호사는 “사망 사건 위자료 기준이 1억 원인데, 언론 사건에 대해 사실상 징벌적 위자료를 매긴 것”이라며 “방송국 자문 변호사 등을 하며 33년을 봤지만 탐사·고발 프로그램이 한 편도 아니고 두 편이 통으로 날아간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편 MBC 노동조합(제3노조)은 선고 다음 날인 28일 “문화방송이 성폭행범이라고 공개적으로 2회에 걸쳐 고발 보도한 사건이 총체적인 허위보도로 판명 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며 “스트레이트를 폐방하라”는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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