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느새 일상에 침투한 얼굴인식 기술…“중국형 감시국가” vs “기술 혜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술 혜택인가, 인권 침해인가. 5~6년 전부터 도입된 얼굴인식 기술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국회의장과 국무총리에 “얼굴인식 기술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며 규제 입법을 촉구하고 나서면서다.

지난 2016년 11월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 박람회장에서 관람객들이 얼굴인식 기술 시연을 체험해 보고 있다. 나이와 성별, 기분 상태 등이 화면에 나타난다. 중앙포토

지난 2016년 11월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 박람회장에서 관람객들이 얼굴인식 기술 시연을 체험해 보고 있다. 나이와 성별, 기분 상태 등이 화면에 나타난다. 중앙포토

인권위는 지난 25일 결정문을 통해 공공기관의 광범위한 얼굴 정보 수집·활용이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분별한 얼굴인식이 국가의 개인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지난 2021년 유엔(UN) 인권최고대표의 권고에 따라 ‘공공장소에서의 실시간 원격 얼굴인식’은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또 “얼굴인식을 가장 활발하게 도입·활용 중인 중국은 자국민을 감시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고, 미국 등 수사기관 중심으로 얼굴인식을 사용하던 국가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2017년 얼굴 인식 기능이 탑재된 폐쇄회로(CC)TV 실시간 분석 시스템 '톈왕(天網·하늘의 그물)'을 공개한 데 이어, 2019년부터 이동통신 사입 때 얼굴 정보 등록을 의무했다. 이를 향한 국제사회의 ‘빅 브라더’ 논란 등을 돌이켜봐야 한다는 취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실제 국내 얼굴인식 기술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공공 영역에서는 행정안전부가 2017년 시범 도입한 공무원 얼굴인식 출입기(워크스루)를 4월부터 4대 정부청사에 전면 도입할 예정이다. 법무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공항 출입국관리시스템이나 경찰청의 범죄 피의자 3D 얼굴인식 시스템 등도 해당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정부가 출입국 심사에서 확보한 내·외국인 얼굴 정보 1억 7000만건을 민간 기업에 학습용 데이터로 개방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27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은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수집한 얼굴 데이터를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위법”이라며 감사원에 법무부와 과기정통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법무부와 과기정통부는 “출입국관리법에 의거한 적법한 처리였으며, 민감정보 유출이 아닌 개인정보처리 위탁”이라고 밝혔다.

2017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12일 오전 관계자들이 자동출입국심사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2017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12일 오전 관계자들이 자동출입국심사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민간에선 네이버·SK텔레콤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사옥 출입뿐 아니라 사내 식당·카페 결제도 얼굴로 가능하다. 얼굴인식으로 사옥을 출입하거나 구내 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 A씨(41)는 “동의한 직원들만 쓰고 있어 불만은 없다”면서도 “회사가 내 얼굴 정보를 사업적으로 활용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다”고 말했다. 판교의 한 IT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B씨(29)는 “회사와 정부가 내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알아야 데이터 주체로서 권리를 행사할 텐데, 아직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얼굴인식 기술 규제를 둘러싼 정부 내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인권위는 얼굴인식 도입에 앞서 ‘인권 영향평가’를 신설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행정안전부 등은 소극적이다. 행안부 정부청사관리본부 관계자는 29일 “워크스루 전면 도입은 상주 공무원이 주 대상이고, 방문객의 경우 선택사항이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3D 얼굴인식 시스템은 재범 우려가 있는 피의자 사진으로만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범죄 수사에만 활용하고 있다”며 “현재 연구·개발 중인 얼굴인식 기술도 아동·치매노인 실종 사건이나 범죄 피해자 신변보호 등에 한정된다”고 설명했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얼굴인식 기술 자체의 편의성이나 개발 필요성을 부정할 순 없다”며 “기술이 원래 목적 외에 오·남용되는 경우 처벌이나 손해배상 기준을 확실히 세워주는 것이 의미있는 제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