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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고금리 더 부추기나…돈 풀어 난방비 지원하자는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연초부터 정치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정을 추가로 풀어 난방비 ‘폭탄’을 맞은 서민들에게 직접 돈을 쥐여주자는 것이다. 이런 현금 살포책이 가뜩이나 높은 물가와 금리를 자극해 서민들에게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안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적으로 한파가 불어닥치며 난방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30평대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난방비 관련 항목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전국적으로 한파가 불어닥치며 난방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30평대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난방비 관련 항목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 국민 난방비 지원을 위한 긴급 추경을 즉각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6조4000억원만 쓰더라도 매달 10만원씩 3개월 동안 전 국민에게 난방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난방비 지원을 위한 추경 편성 주장은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내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물가지원금 등을 포함한 30조원 규모에 추경 편성을 제안했었는데, 난방비 폭등을 계기로 다시 추경 편성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지난 25일 “난방비 폭등과 관련해서 국민들의 더 큰 고통이 계속되지 않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요청을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했다. 민주당은 30조원 중 7조2000억원을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으로 쓰자는 입장이다. 소득 상위 20%를 제외한 모든 가구에 1인당 최대 25만원을 주자는 것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포퓰리즘’이라고 일축했는데, 이날 민주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국민의힘 내에서 나온 것이다. 정의당 역시 “모든 가구에 난방비 30만원을 지원하자”며 추경 편성 주장에 가세했다.

하지만 추경 편성은 난방비 폭등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아니라는 지적이 경제계에서 나온다. 난방비 지원을 명목으로 대규모 현금이 풀릴 경우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를 더욱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지난해 5월 59조원 규모의 2차 추경 편성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추경이 물가를 0.16%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연초부터 식품업체 등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고, 향후 지하철과 같은 공공요금 인상도 줄줄이 예정된 상황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추경이 최근 내림세를 보이는 시장 금리를 다시 반등시킬 수도 있다. 추경을 위해 적자 국채를 찍어 국채 물량이 시장에 쏟아질 경우 채권 금리는 오르게 된다. 지난 2021년 10월 29일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가 ‘전 국민 지원금 100만원 지급’을 시사하자  해당 발언이 채권 시장을 자극해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금리 발작’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대표의 발언 전날 연 2.017%였던 3년 말기 국채금리는 발언 당일 연 2.103%로 0.086%포인트 뛰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 인한 가격 상승을 현금 살포로 대응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가뜩이나 물가와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추경은 근원물가와 시장 금리를 끌어올려 고물가‧고금리 현상을 더욱 장기화할 수 있고 이에 따른 고통은 서민들이 감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추경 편성 반대 이유로 물가 및 금리 상승 가능성을 꼽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정책을 추가로 해서는 안 된다”며 “대규모 적자 국채를 발행하면 그게 또 금리 인상 요인이다. 금리가 상승하면 취약계층이 어려운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경기가 부진하고 재정 상황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 여력을 남겨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올 하반기에 경기 부양을 위한 추경 편성 등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연초에 불필요한 추경을 편성하면 추후 정책 여력이 줄어들게 된다”며 “우선은 상대적으로 난방비 폭등 충격을 더 많이 받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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