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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 위해 연 법정문 내빼다 죄 추가…송사 범람 낳은 코로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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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사망한 故정유엽 군의 아버지 정성재 씨는 지난 1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뉴스1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사망한 故정유엽 군의 아버지 정성재 씨는 지난 1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뉴스1

“극단적 선택을 제외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호소했지만,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아 사법부에 호소합니다.”

지난 16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던 2020년 3월 아들 정유엽 군을 잃은 정성재(56)씨가 병원과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한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은 지 3년,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 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지 여부를 곧 논의하고 우리나라는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의무를 해제하는 등 ‘코로나 시대’ 끝이 보이지만 법정에선 그간의 상처 치유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중이다.

①국가 재난 상황, 대응은 적절했나

2020년 12월 29일 누적 확진 761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동부구치소에서한 수용자가 자필로 '살려주세요'라고 쓴 문구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구치소 내에서 코로나19에 걸렸던 수용자와 가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뉴스1

2020년 12월 29일 누적 확진 761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동부구치소에서한 수용자가 자필로 '살려주세요'라고 쓴 문구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구치소 내에서 코로나19에 걸렸던 수용자와 가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뉴스1

‘코로나 송사’의 가장 큰 줄기는 정승재씨의 경우처럼 ‘관리‧대응 부실’로 인한 감염‧사망에 대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병원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다.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산으로 홍역을 앓은 대구시의 일부 시민들은 대구시와 국가를 상대로, 서울 구로구 코호트 격리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환자들의 유족들은 국가와 요양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2020년 12월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당시 수용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도 계속되고 있다. 대구시 소송에선 초기 방역 조치에 구멍은 없었는지가, 요양병원 사건에선 코호트 격리의 법적 근거가 있는지와 과도한 격리가 피해를 키우지 않았는지 등이 쟁점이다. 지난 12일 동부구치소 사건 재판에선 법무부가 “적절히 대응했다”면서도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자 법원은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를 보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②자유vs건강…처음 보는 격리·검사, 거부하다 실형까지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은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으로 2020년 구속기소됐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고, 서울시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기각됐다. 연합뉴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은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으로 2020년 구속기소됐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고, 서울시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기각됐다. 연합뉴스

 한때 강력했던 국가의 방역지침과 개인의 자유 추구 사이 갈등도 법정으로 옮겨붙었다. 감염자 동선 파악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요청한 신도 명단 제출을 거부하거나 누락한 신천지예수교회와 이만희 총회장은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됐지만 법적으론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에선 ‘교인 명단 제출은 역학조사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서울시는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지난 20일 패소했다.

개인들의 자가격리 등 방역수칙 위반에 대한 법적 판단은 엄격했다. 자가격리 기간에 외출해 산책·사우나 등을 즐기고, 확진 이후 임시생활시설에서도 무단이탈했다가 집행유예 없이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었고, 자가격리 기간에 쏘다닌 뒤 역학조사 때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가 벌금 1000만원 형을 받은 사람도 나왔다.

검사·방역조치를 거부했다가 죄를 저지른 경우도 많았다. 2021년 4월엔 동부구치소 수용자 중엔 코로나19 검사를 거부하며 직원의 배를 걷어차고 욕설을 한 혐의(공무집행방해)로 기소돼 징역 6개월을 추가로 선고받은 이도 있었고, 2022년 1월 방역 차원에서 이송 대상이 된 것에 불만을 품고 출입문 강화유리를 발로 차 깨부쉈다가 공용물건손상죄로 벌금 100만원을 문 사람도 있었다.

③코로나19의 긴 상흔… ‘자연재해만큼 예상 못한 일’ 

2020년 3월 텅 빈 명동 거리의 모습. 이 시기 영업을 접으면서 임금체불, 퇴직금 체불 등으로 소송이 많이 진행됐고, 가게 계약 등으로 분쟁을 빚는 경우도 많았다. 뉴스1

2020년 3월 텅 빈 명동 거리의 모습. 이 시기 영업을 접으면서 임금체불, 퇴직금 체불 등으로 소송이 많이 진행됐고, 가게 계약 등으로 분쟁을 빚는 경우도 많았다. 뉴스1

 코로나19로 생존권을 위협받은 이들의 절규도 법정을 향했다. 2021년 코로나19 확진으로 임용시험 응시를 제한당한 수험생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각 1000만원씩 배상 판결을 받았다. 직원의 마스크 미착용을 이유로 7일 집합금지명령을 받아 영업을 못한 식당 주인은, 10개월이 지난 뒤에야 ‘구청의 조치가 위법했다’는 판결을 받아들었다.

코로나19가 확산세가 정점이었던 2020년 3월 퇴직한 직원들에게 임금 및 퇴직금을 주지 못해 벌금을 문 자영업자는 셀 수 없이 많았고, 외국인 관광객이 끊기며 영업이 어려워져 계약 해지 의사를 밝힌 명동 건물주-가게주인의 다툼도 법원까지 갔다. 재판부는 가게 주인의 상황이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90일 이상 영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해 계약해지가 적법하다고 밝혔다. 판결문에는 화재·홍수·폭동 등 재해와 같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며 매출이 90% 이상 감소될 것이라는 사정은 원고·피고는 물론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라는 설명이 덧붙였다.

④방역 위해 열어둔 법정문으로 내뺀 피고인

 ‘확진자 동선’ ‘확진자가 ㅇㅇ의 누구래’ 등 네티즌들 사이에서 확진자를 특정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건도 두드러지게 늘었다. 확진자 정보를 유출한 광주광역시와 청주시 공무원은 공무기밀누설로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세종시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줌바강사’라며 사진과 함께 허위사실을 퍼트린 사람은 명예훼손 사실이 인정돼 벌금 100만원에 처해졌다.

흔한 범죄들도 코로나19를 빌미 삼아 벌어졌다. 2020년 3월, 품귀현상을 빚었던 마스크를 판다며 총 1460만원어치 돈을 받기만 한 사기범에겐 1년 8개월형이 선고됐다. 전역이 채 한달도 남지 않은 한 군인은 치료차 휴가를 나왔다가 부대 복귀 없이 전역하기 위해 자가격리 통지서를 위조했다가 들통나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코로나19 시기 방역‧환기를 위해 법정 문을 열어둔 곳이 많았는데, 어떤 피고인은 실형 선고를 듣고 격분한 나머지 열린 문으로 도망치다 복도에서 붙들려 도주미수죄를 추가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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