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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핏빛 국가 테러’…‘잊힌 비극’에 손 놓은 국제사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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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09면

미얀마 쿠데타 2년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총사령관이 지난 4일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총사령관이 지난 4일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음달 1일은 미얀마 군부(땃마도)가 쿠데타를 통해 합법적인 민주 정부를 무너뜨린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땃마도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하고 군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몰락한 2020년 11월 8일 총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2021년 2월 1월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 이후 흘라잉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의회와 민주 정부를 무너뜨리고 윈 민 대통령과 수치 국가고문을 구금하는 등 공포정치를 자행해 왔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 유혈 진압, 소수민족을 겨냥한 무차별 폭격, 민주 인사 처형, 무슬림(이슬람 신자)인 로힝야족 탄압 등 ‘핏빛 국가 테러’도 서슴지 않고 있다.

망명자들이 운영하는 ‘미얀마 정치범 지원 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지난 25일까지 미얀마 군부에 의해 피살된 국민은 최소 1924명에 이른다. 또 1만7457명이 구금돼 그중 2565명이 풀려나고 1만3658명은 여전히 억류·복역 중이며 나머지 1200여 명은 소재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BBC 방송은 실제 희생자는 AAPP가 집계한 숫자의 10배에 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신한 민주 인사들이 구성한 국민통합정부(NUG)도 “지난 1년간 4만1000채 이상의 집이 (땃마도에 의해) 불타거나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땃마도의 반인권적·반인륜적 만행에 국제사회가 거의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수치 고문이 군정법원에서 선거조작·부패 등 19개 혐의로 3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의 성명 발표와 일부 제재를 제외하곤 석방을 위한 국제사회의 구체적인 노력은 찾기 어렵다. 미얀마 사태가 코로나 팬더믹 여파와 지난해 2월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글로벌 경제 위기, 각국의 정치 사정 등에 밀려 ‘잊힌 비극’이 되면서다. 민주주의·인권·인도주의를 앞세운 서방의 관심과 우선순위에서 미얀마는 갈수록 뒤로 밀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서방이 아무리 경제적·인적 제재를 가해도 1962~2011년의 50년 쇄국에 단련된 땃마도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 생활만 어려워지는 현실도 난제로 꼽힌다. 이런 미지근한 상황을 틈탔는지 흘라잉은 최근 선거관리위원회에 전국 유권자 조사를 지시했다. 올해 8월 총선을 위한 사전 준비로 보인다. BBC 등이 현지 언론을 인용해 전한 데 따르면 땃마도는 일부 소수민족과 손잡고 나눠먹기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의회 의석의 26%를 안정적으로 확보한 뒤 기존 헌법에 따라 자신들 몫으로 배정된 25%를 합쳐 전체의 51%를 차지해 의회를 장악하고 흘라잉은 대통령에 올라 장기 집권하려는 포석이다.

흘라잉은 쿠데타 직후 땃마도 최고 기구인 국가통치평의회(SAC)를 구성해 의장을 맡은 데 이어 2021년 8월 1일엔 과도정부를 세운 뒤 총리에 오르며 군정과 국정을 한손에 움켜쥐었다. 쿠데타 직후 선포했던 1년의 국가 비상사태도 올해 8월까지 2년 6개월로 연장했다. 전 세계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땃마도와 흘라잉은 영구 집권용 ‘정치 공작’을 착착 진행해 나간 셈이다.

미얀마도 가입한 지역 기구인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도 내정 불가침 원칙을 내세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흘라잉은 2021년 4월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에서 폭력 중단 등 평화적 사태 해결에 합의해 놓곤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은 지난해 11월 10~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흘라잉의 참석을 배제한 ‘솜방망이 징계’가 고작이었다.

프놈펜에 모인 아세안 정상들은 미얀마 유혈 사태 해결을 위한 평화 합의 이행을 촉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세안의 목소리는 분열됐다. 2014년 5월 이래 쿠데타 세력이 집권 중인 태국, 훈 센 총리와 인민혁명당(CPP)이 1985년부터 38년째 장기 집권하는 캄보디아, 1975년부터 공산주의 일당독재 정당인 라오인민혁명당(LPRP)이 통치해온 라오스 등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국제사회 대응

2021년   4월 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흘라잉과 평화적 해결 합의(준수 안함)
2022년 11월 아세안 정상회의, 흘라잉 참석 배제/평화합의 이행 촉구
2022년 12월 노르웨이 금융투자위, 미얀마에 무기 판매 중국‧인도 기업 투자 회수
        12월 21일 유엔안보리, 결의 2669호 채택 군부 폭력 규탄

그래도 일부 희망의 빛이 보이고 있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미얀마 폭력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기대할 만한 부분이다. 쿠데타 발발 22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2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2669호를 채택해 땃마도 폭력을 규탄한 것도 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이 결의는 그동안 땃마도를 음양으로 비호해온 중국·러시아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인도가 기권하면서 이뤄졌다.

노르웨이금융투자위원회(NBIM)가 땃마도에 무기와 관련 기술을 수출한 중국·인도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전액 회수한 것도 고무적이다. 글로벌 뉴스 채널인 알자지라 방송은 지난 25일 NBIM이 2021년 12월 미얀마에 경공격기를 수출한 중국의 애비차이나와 기갑차량 내부에서 원격조종하는 무기 통제 체계를 수출한 인도의 바라트 전자에 대한 투자 지분(각각 0.37%와 0.32%)을 지난해 12월 회수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NBIM은 “이런 장비는 미얀마에서 민간인에 대한 공격에 쓰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이는 국제법에 대한 심각하고도 체계적인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땃마도에 대한 노르웨이 정부 차원의 가치·인권·금융 압박 외교로 평가할 수 있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의 부속기관인 NBIM은 총자산 1조3620억 달러로(지난해 6월 발표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인 노르웨이 국부 펀드(원유 판매 대금과 국가연금으로 구성)를 관리한다. 전 세계 9000개 이상의 기업 외에 펀드·부동산 등에도 투자해 글로벌 영향력이 상당하다. 중국투자공사(1조2220억 달러)·국가외환관리국(9800억 달러)·아부다비투자청(8290억 달러)·싱가포르국부펀드(7990억 달러)·쿠웨이트투자청(6930억 달러)·사우디공공투자기금(6220억 달러)보다도 자산 규모가 크다.

물론 석유 증산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중인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나 범중화권이자 아세안 회원국인 싱가포르가 국부펀드를 이용해 가치·인권 외교에 동참할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의 적극적인 자세와 안보리 결의안 통과, 그리고 노르웨이의 압박 등이 선례로 작용하면서 2월 1일로 쿠데타 2년을 맞는 미얀마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9월 뉴델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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