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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 방안, 겉만 번지르한 부실 밥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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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10면

한국 최초 전산학 박사 문송천 교수

문송천 KAIST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 미래를 책임질 고급 데이터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유진 기자

문송천 KAIST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 미래를 책임질 고급 데이터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유진 기자

지난해 8월 정부는 2026년까지 총 100만 명의 정보기술(IT)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5년간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 빅데이터, 메타버스,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5G·6G 통신, 사이버 보안 등 8개 분야에서 초급(고졸·전문학사) 16만명, 중급(학사) 71만명, 고급(석·박사) 13만명 등 총 100만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고급 인력을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고등교육법을 개정시켜 5년 6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학사·석사·박사 통합과정도 신설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정부 목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인재 양성에 필요한 교원 확보나 관련학과 정원 확대 등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을 양성한 후에는 어느 분야에 투입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하나도 알려진 게 없다. 국내 최초 전산학 박사이자 컴퓨터 데이터베이스(DB) 분야의 권위자인 문송천 KAIST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기초 코딩 인력만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전형적인 선심성 정책”이라며 “향후 국가 경쟁력이 될 소프트웨어 영역, 특히 DB를 설계, 제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퇴직 교수·기업인 교육 현장에 투입해야

정부가 내놓은 계획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5년 내 100만 명의 인재를 양성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배출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이들 중 90% 이상이 단순 코딩을 소화하는 수준에만 머무를 것이란 점이다. 이런 인력은 지금도 남아 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고차원의 데이터를 직접 설계, 제작해 여러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이다. 그런데 이런 고급 인력을 어떻게 양성하겠다는 계획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100만명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달성하는 것에만 공들인 계획이 아닐까 싶다. AI,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 얼핏 들으면 전문적으로 보이는 분야만 늘어놓고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차려둔, 실속 없는 밥상 같다.”
정부는 조기교육을 내세웠는데.
“초등학교·중학교 정보 수업시수를 현행 17시간, 34시간 수준에서 2배 이상 늘리겠다고 하는데, 터무니없다. 학기당 10시간을 배우든, 100시간을 배우든 이들이 고급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될까. 코딩만 주야장천 하지 않겠나. 학교 선생님들조차 지식이 부족한데 시수만 늘려서는 결코 소프트웨어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대학에서는 인문계 전공생들이 달려들어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코딩 학원에 다니는 등 그야말로 전 국민이 소프트웨어 교육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고급 인력들은 모두 기업에 가버리니 이들을 가르칠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특성화중을 제외한 전국 중학교 3172개교 중 정보교과 정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1510개교(47.6%)로 절반이 채 안 된다.”
교육인력을 확보할 방안이 없나.
“사실 이 문제는 법만 개정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수년 사이 쏟아져나오는 퇴직 교수, 은퇴 기업인들을 재고용해 교육 현장에 투입하는 거다. 정부는 민간인력에 교직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는데, 기업과 학교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을 왜 낭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보·컴퓨터 교과 정교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2000명도 되지 않는데 감당이 가능한가. 나조차도 은퇴 후 학교를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었는데 자격이 안 된다며 뽑아주질 않는다. 나름 전산학 1호 박사인데. (웃음)”
그간 수십만 명의 SW 전공자가 배출됐는데.
“IT 강국인 우리나라 기업 중 세계 100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2곳밖에 없다. 심지어 이 회사들은 소프트웨어와는 관계없는 하드웨어(반도체) 기업이다. 무늬만 ‘IT 강국’이었다는 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네이버, 카카오도 해외 시장에서는 먹히지 않는 내수용 기업이지 않나. 세계 SW 시장 규모는 매년 커지는데, 우리나라 점유율은 0.9%에 불과하다. 아무리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 시장이라고 해도 경쟁국인 중국, 일본, 대만 등에 뒤처졌다는 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DB 관리 안 돼 2000억 들인 시스템 삐끗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그동안 AI, 빅데이터 등 최상위층에 있는 기술 개발에만 매달려 뜬구름만 잡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SW 개발의 시작은 DB를 구축하고, 설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코드를 가져다 입력해도 밑바탕이 되는 DB가 엉망이면 결과물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화려한 용어와 신기술에 휘둘려 이 부분을 소홀히 해왔다. 대학에서도 이미 정제된 DB를 가지고 시험문제를 풀게 하고, 기업들은 자체 DB 개발보단 외주업체 대행을 선호해왔으니 누가 제대로 다룰 줄 알겠나.”

문 교수는 최근 LG CNS, 한국정보기술 등 국내 최고수준의 시스템 통합(SI) 업체들이 투입된 보건복지부 차세대 사회보장시스템이 개통 첫날부터 말썽을 부린 것도 기초가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0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투입했는데, DB가 제대로 설계되지 않아 그야말로 폭삭 무너졌다는 것이다. 매번 반복되는 금융사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모두 DB 관리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기초 DB가 형편없는데 최상위 기술인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을 개발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대안은 있나.
“인도처럼 단순 코딩만 반복하는 SW 용역 국가를 지향한다면 지금처럼 전공자 숫자만 늘리는 정책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SW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신산업 먹거리 아닌가. 언제까지나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이 가진 능력에 기대 살아남을 순 없다. 필연적 미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모든 디지털 기술의 원천인 DB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말만 그럴듯한 AI를 내세워 ‘디지털 인재’를 키우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기초부터 탄탄하게 다질 ‘데이터 인재’를 만드는 일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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