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알아서 챙겨주는 복지, ‘수원 세 모녀 비극’ 재발 막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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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16면

코딩 휴머니즘 〈끝〉

코딩 휴머니즘

코딩 휴머니즘

#한 가족이 거실에서 대형 TV로 극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내며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 알람이 울린다. “고3느님이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인공지능(AI) 스피커에 외친다. “하이 빅스비, 고3 모드!” 엄마의 외침을 감지한 AI 스피커가 다른 디지털 기기를 제어하기 시작한다. TV가 꺼지고 공부방의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며 공기청정기는 무풍으로 전환되면서 집 안 전체가 조용한 분위기로 연출된다. 집에 들어온 수험생 딸이 LED 스탠드가 밝혀져 있는 공부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가족들은 무선 이어폰을 끼고 다시 영화 감상 모드를 이어간다.

이 시나리오는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일상도감’ 캠페인 영상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하여 사용자의 의도에 맞게 모든 디지털 기기가 자동으로 세팅되는 환경을 ‘스마트싱스’라고 부른다. 고3을 위한 맞춤형 솔루션뿐만 아니라 육아, 재택근무, 홈트, 반려동물과 함께하기 등 집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상을 편리하게 누릴 수 있는 맞춤 솔루션 33가지를 캠페인 영상으로 선보였다.

# ATM(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어떤 이용자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ATM을 만지자 화면에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휴대폰 통화를 멈추고 거래해 주세요”라는 경고가 뜬다. 잠시 후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이용자가 ATM 앞에 서니 이번에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주세요”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사례는 신한은행이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고령 고객 비중이 높은 영업점에 설치한 ‘AI 이상행동 탐지 ATM’이다. 은행 내부의 데이터 전문가가 AI 딥러닝 기술로 ATM 이용 시 정상거래와 이상 거래의 행동 유형을 분석하여 개발했다고 한다. 이는 최근 기술의 지향점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ATM이 돈을 인출해 주는 단순 기능에 그치지 않고, 이용자의 의도와 상황, 맥락을 파악해 알맞은 기능을 먼저 제공하는 것이다.

‘신청주의 복지’의 한계

일상 속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사는 셈이다. 과거에는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이용자가 자신의 필요에 맞춰 조작해야 했다면 이제는 기술이 이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파악해 미리 제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용자의 사용 흐름을 파악해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술, 나아가 이용자가 표현하기도 전에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기술, 궁극적으로는 이용자가 필요를 깨닫기도 전에 먼저 솔루션을 제공해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기술, 이러한 기술을 ‘선제적 대응기술(Proactive Technology)’이라고 부른다.

이 선제적 대응기술이 최근 보편화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 리빙(smart living)’을 목표로 하는 건설업계가 선도해 나가는 모양새다. 일례로 삼성물산의 아파트 ‘래미안’에 적용 중인 ‘웰컴 투 래미안’ 시스템은 거실에 사람이 들어서면 자동으로 조명을 켜고 홈 패드에 정보를 띄워주는데,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기능이 작동된다. 동일인이라 할지라도 잠에서 깨어나 방에서 나온 것이라고 판단되면 거실 조명을 밝히고 오늘의 날씨 등 생활정보를 제공해 주는 반면, 외출 후 귀가한 상황으로 판단되면 부재중 방문자나 단지 내 신규 공지사항 등을 알려주는 식이다.

이러한 기술은 이용자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맥락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선제적 대응기술은 이용자가 불편함을 느끼거나 위험을 감지할 여지도 주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이용자는 그런 기술이 “훨씬 더 좋다”라는 점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기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불편함이 없게 만드는 것, 어떤 보살핌이 필요한 곳에 섬세한 손길을 제공해 주는 것, 이러한 선제적 대응기술이 가장 절실한 곳은 어쩌면 공공복지 분야일지도 모른다. 생활고와 투병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이른바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은 복지 사각지대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8월 21일,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병원비 때문에 월세가 밀릴 정도로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세 모녀 중 어머니 A씨(60대)는 암 진단을 받았고 40대의 두 딸은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건강보험료도 못 낼 정도로 생계가 어려웠으니 기초생활보장제 생계급여(3인 가구 기준, 월 125만8410원)나 의료급여 대상자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아니면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해 생계지원금이나 의료비를 일시적으로 받을 수 있고, 의료비 부담이 컸다면 재난적 의료비(최대 3000만원) 지급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 모녀는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복지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신청주의’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복지제도를 인지하고 신청하지 못하면 혜택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세 모녀는 주민등록상의 주소지와 실거주지도 달랐다. 등록 주소지인 경기 화성시나 실제 거주지인 수원시에 이런 복지 신청을 한 이력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이사하면서 전입신고조차 하지 않았던 셈이다. 이미 2014년 이와 유사한 ‘송파 세 모녀 사망사건’도 있었다. 이후 복지체계를 강화했다고 하지만, 이번에도 위기에 놓인 이들에게 복지시스템은 가닿지 않았다.

‘발굴주의 복지’로 전환해야

지난해 8월 생활고와 투병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의 집. 연락을 달라는 가스검침원의 메모가 보인다. [중앙 포토]

지난해 8월 생활고와 투병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의 집. 연락을 달라는 가스검침원의 메모가 보인다. [중앙 포토]

만약 이러한 복지 영역에 선제적 대응기술이 적용됐다면 위기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전기·수도·가스·난방의 사용 추이나 통신비·의료비 등의 연체 현황 같은 정보들을 서로 연계시키는 행정망을 구축할 수도 있다. 이런 행정망에 AI 기술을 도입하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선제적으로 찾아내어 복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와 지자체도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기 위해 기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공과금 체납과 단전, 단수 등 33가지 항목을 정해 ‘위기가구’를 지정하고 필요한 경우 현장 조사도 하고 있다. 수원 세 모녀의 경우에도 건강보험료가 1년 4개월 치가 밀렸기 때문에 화성시 담당 공무원들이 주소지를 방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 모녀가 2020년 수원시로 이사한 후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탓에 화성시는 이들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고, 수원시 역시 이와 연계된 정보가 없어 이들 세 모녀의 존재 자체를 알 수도 없었다. 만약 상호 연계된 행정망이 있었다면 전입신고가 되지 않았더라도 이들을 찾아내고 도움의 손길을 제때 내밀 수 있었을 것이다.

주민등록상 거주지 방문 조사에서 소재지 확인이 안 되면 이들을 ‘비대상자’로 분류하고 있다. 계속해서 소재지 파악이 되지 않으면 “거주지가 불분명해 주민등록이 말소될 수 있다”라는 내용으로 시청이나 주민센터 홈페이지에 공고한다. 이후 1년이 지나도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거주불명자’로 등록돼 주민등록지가 주민센터로 바뀌고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는 거주불명자 명단에 포함된다. 이러한 행정 절차는 있지만, 결국 거주불명자는 찾지 못한다. 그 실사례가 바로 ‘수원 세 모녀 사망사건’인 셈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이러한 거주불명자 수는 24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 5년 이상 장기 거주불명자만 따져도 1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과연 이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현실은 그들의 생존 여부조차 알 길이 없다.

신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복지제도는 결국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가 없다.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한들 정보를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혜택을 받지 못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정보를 인지하기 어려운 상당수가 사실은 그 대상이 되어야 할 대상자들이다.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들은 대부분 정보를 습득하거나 인지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에서도 ‘신청주의 복지’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발굴주의 복지’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시작이 ‘국민비서 알림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서비스의 핵심은 AI를 이용해 몰라서 받지 못했던 복지제도를 찾아서 알려주는 서비스다. 어찌 보면 신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정부 서비스다. 현재는 국민비서를 통해 33종의 알림서비스를 민간 앱 등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인터넷과 모바일에 능숙하지 않은 사용자라면 이 역시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단순 알림에서 멈추는 서비스가 아니라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 과정을 선제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하니 지켜볼 따름이다.

이제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신청주의 복지’가 아니라 ‘발굴주의 복지’가 실제로 가능한 세상이다. 이미 가능한 모든 기술이 앞서 언급한 ‘선제적 대응기술’로 구현되고 있다. 이 기술의 가장 중요한 핵심도 이미 언급했다. 기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불편함이 없게 만드는 것.

기술은 앞서가는데 복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정부에서 꾸준히 복지제도를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실제 대상자들의 복지 경험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복지란 일반적인 서비스와 다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의 임의성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법과 기준에 따라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다. 따라서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당연히 정부로부터 복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권리로서의 복지’에 대한 인식이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오민수 멀티캠퍼스 minsuu.oh@multicampus.com 정보산업공학을 전공했고 코딩을 배웠으나 글쓰기를 더 좋아한다. 멀티캠퍼스에 입사 후 삼성그룹 파워블로거, 미디어삼성 기자를 병행하면서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현재는 ‘멀티캠퍼스’에서 IT 생태계의 저변을 넓히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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