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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심각한 역전세난, 더 과감한 대책 필요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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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30면

전셋값 급락에 세입자도 집주인도 고통

DSR규제 신축 적용, 보증제도 보완 필요

부동산 실정 책임 거대 야당도 협조해야

‘역(逆)전세난’이 심각하다. 아파트 등 부동산 매매가에 이어 전세가가 동반 급락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거래 중 20%가량이 2년 전보다 전세금을 낮춰 계약했다고 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7주 연속 1%대 하락 폭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에게 받아서 이전 세입자에게 준다. 부동산 경기가 안정적일 때나 상승할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최근처럼 전세가가 급락하고 거래가 얼어붙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새로 들어올 세입자가 없으면 집주인은 현실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내어주기 어렵게 된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했다 해도 전세보증금이 뚝 떨어진 탓에 집주인은 그만큼의 차액을 어디에선가 구해야 한다.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에 이용할 수 있는 ‘임대보증금 반환자금보증’의 보증 한도를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확대했으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상이 12억원 이하 주택인 데다 최근 전세보증금 인하 폭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금지했던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담보대출을 지난해 12월부터 허용했으나 최근 대출금리가 급격하게 오른 탓에 원리금 감당이 만만찮아졌다.

역전세난은 집주인에게만 고통이 아니다. 세입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자녀교육 등의 이유로 이사하려고 해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장기간 발이 묶이는 사례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역전세난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남 등 서울 주요 지역에서 대단지 입주가 이어지면서 새 아파트 전세물량이 쏟아지는 데다 고금리 탓에 전세가 하락이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인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반대의 혼란을 겪었다. 아마추어적 부동산 실정과 돈 풀기 기조의 정책이 겹치며 집값 폭등과 전세 대란이 벌어졌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과 시의적절하지 못한 대처에 따른 고통은 전세난과 역전세난이 다르지 않다.

혹자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역전세난 고통쯤은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 하락은 지나친 급등 이후 정상 회복 과정이기 때문에 일부러 손댈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역전세난이든 전세난이든 그 고통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고통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경제 전반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전세난 완화를 위해 정부가 보다 세심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우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신축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DSR 규제는 그간 부동산 경기 과열 때 갭투자를 방지하고, 부실 대출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역전세난이 심각해진 지금, 전세금 반환 목적의 대출이라면 규제를 완화해 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애꿎은 전세 세입자의 피해를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 최근 ‘빌라왕 사기 사건’에서 보듯 허술한 전세보증제도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깡통 전세’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다세대 연립 주택에 대해선 더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 과거 부동산 실정의 책임을 통감해야 할 거대 야당도 부동산 시장 정상화와 역전세난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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