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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조각·건축 넘나들어 “가장 저평가된 예술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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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18면

폐막 앞둔 문신 탄생 100주년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문신(文信):우주를 향하여’ 전시 전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문신(文信):우주를 향하여’ 전시 전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가장 과소평가된(underrated) 한국 예술가 중 한 명” (아트뉴스 에디터 막시밀리아노 듀론)

“공원이나 빌딩 앞의 커다란 조각으로만 익숙했는데 이렇게 보니 새롭고 감동적이다. 그림도 잘 그리셨다는 걸 처음 알았다.” (50대 여성 관람객)

29일까지 열리는 미술가 문신(1922~1995)의 회고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에 대해 쏟아지는 호평이다. 지난 26일 오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는 평일인 데다 오전에 많은 눈이 내려 교통이 불편했는데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적지 않았다. 국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일 개막일부터 지금까지 16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관람객의 다양한 연령대다. 석조전 서관에 자리잡은 국현 덕수궁관은 20세기 초중반 한국미술에 특화되어 있어서 평소 관람객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문신 회고전에는 중장년층과 1020 관람객이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지난 5일 문신의 고향인 창원특례시는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을 방문하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 후 문신미술관 관람객이 급증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 영향도 있는 듯했다.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국현과 창원시가 협업한 이 전시는 조각 95점, 회화 45점, 드로잉, 판화, 도자 등 총 230여 점을 선보이는 역대 최대 규모 문신 회고전이다.

권위있는 미국 미술전문지 ‘아트뉴스’는 지난달 ‘2022년을 대표한 전시’ 기사에서 독일 카셀 ‘도큐멘타 15’ 등 세계 각국의 전시 25개를 뽑으면서 이 전시를 포함시켰다. 기사에서 시니어 에디터 듀론은 “문신이란 예술가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성취임을 보여주는 끝내주는 전시”라고 극찬했다. 그는 이 기사와 별도의 리뷰 기사에서 문신이 생전에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나 지금은 덜 알려지고 저평가되어 있다고 반복해서 한탄했다.

문신의 ‘자화상’(1943).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문신의 ‘자화상’(1943).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를 기획한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문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귀국 후 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조각가로 이름을 얻은 작가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흐름에서 이례적인 작가다. 그는 어느 한 집단, 한 범주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평생 경계를 넘나들며 이방인으로 살았다. 즉 지리적, 국가적 경계를 초월했을 뿐 아니라, 회화, 조각, 공예, 실내디자인, 건축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특성 때문에 저평가되기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작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라고 박 연구사는 강조했다.

문신은 일제 강점기 일본 규슈의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지금은 창원시)으로 와서 지내다가 16세에 다시 일본에 건너가 일본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화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마흔 살이 다가오던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조각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살롱 드 메’(Salon de Mai, 5월 살롱) 등 당시 주요한 살롱에 초대받아 활동했다. 프랑스 정부에서 귀화를 권할 정도로 인정 받았으나 1980년 영구 귀국했고 마산에 정착해 지연·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에만 몰두했다. 직접 디자인, 건축한 문신미술관을 1994년 개관하고 이듬해 타계했다.

전시는 이렇게 경계 초월적인 문신의 면모를 강조하도록 구성되었다. 제1전시실은 그의 회화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제2전시실에는 작가가 프랑스로 간 후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제작한 나무 조각이 주를 이룬다. 구 또는 반구가 구축적으로 배열되어 무한히 반복되는 듯한 기하학적 조각들과 곤충·새·식물 등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조각들이 있다. 아트뉴스의 듀론은 문신의 조각이 “신체기관을 닮은 육감적이고 물결치는 덩어리들이며 때로는 외계의 존재에 가깝게 보인다”고 평하기도 했다.

제3전시실에는 문신의 브론즈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는 같은 형태를 다양한 크기와 재료로 제작했는데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지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한 것이 특징이며 여기에서 일종의 ‘장인정신’이 발견된다고 국현은 설명했다.

4전시실은 도시 환경과 공명하고자 한 그의 공공미술을 다룬다. 특히 그가 프랑스에 있을 때 시도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을 VR로 구현해 관람객이 체험하도록 한 것과 ‘공원 조형물 모형’을 3D 프린팅으로 구현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이 전시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문신 조각이 대칭으로 유명하지만 완벽한 좌우대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연구사의 설명이다. “생명체가 대칭이지만 정확한 대칭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의 독창적인 추상 조각은 기계적인 추상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의 생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미술관들의 관례를 깨고 문신의 조각 작품을 하얀 사각형 받침대가 아닌 유기적으로 흐르는 형태의 받침대 위에 설치했다. 또한 전시장에 은은하게 음악이 흐른다. 박 연구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은 BGM(배경음악)이 아니라 문신의 작품에서 영감 받은 음악을 함께 전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조각 전시실에선 피아노곡이 문신 작품의 조형적 특징인 모티프의 반복과 변주를 들려주며, 브론즈 전시실에선 문신 작품의 물성인 금속성을 나타내는 트럼펫 음악이 흐른다. 이 둘은 우리 미술관이 의뢰해서 새로 작곡된 곡이다. 추상적인 음악과 추상조각이 공명하도록 하고 싶었다.”

이런 시도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아트뉴스의 듀론 에디터는 전시 디자인을 극찬했다. 반면에 평론가들 사이에 ‘순수한 작품 감상을 방해한다’ ‘너무 멋을 부렸다’ 등의 비판도 들린다. 박 연구사는 “호불호가 갈릴 것을 각오했다. 문신의 작품세계에 오감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공감각적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문신의 고향 창원의 대표 미술관인 경남도립미술관 관장이자 서예가·현대미술가인 김종원은 이 전시를 이렇게 평했다.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종합적으로 잘 만든 전시다. 다만 문신의 철학을 깊이 있게 살피는 데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문신은 화가로도 조각가로도 볼 수 있다. 조각의 경우 지나치게 세련되고 매끈하고 아름다워서 오히려 그의 정신성이 잘 나타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회화에서 그의 내면적인 세계, 내면에 침잠해 있는 개인적, 시대적 우울 등이 분명하게 전달된다. 특히 드로잉에서 그게 강하게 느껴지는데 드로잉이 많지 않은 게 아쉽다.”

이렇게 활발한 평이 나오는 것은 이 전시가 어느 쪽이든 범상치 않은 전시라는 방증이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전시의 마지막 이틀인 이번 주말을 활용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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