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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같은 편만 봐선 미래문제 해결 못 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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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31면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미래는 중요하다. 우리는 좋든 싫든 결국엔 미래에 살게 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리더란 한 조직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그런 리더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은 많지 않다.

오늘날 리더는 미래라는 것에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않는다. 특별히 그가 나쁜 리더여서가 아니다. 계속되는 단기적 위기에 대응해야 할 수도 있고,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만의 미래상에 도취되어 굳이 이야기를 안 들을 수도 있다.

‘좋은 리더’라면 미래연구를 통해 기회와 도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을 할 것이다. 바람직한 미래란 저절로 오는 것도 아니고 남이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원만 투자한다고 그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보기보다 쉽지 않다. 세상이 복잡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가 충돌하는 곳이기에, ‘정해진’ ‘객관적’ ‘합리적’인 미래란 없다. 미래는 열려 있고 구성원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 있다.

개인은 다수 견해에 순응하기 쉬워
‘집단 강화’ 늪에 빠지면 신뢰 상실
편향 극복하지 못한 정책은 말썽
공감대 없으면 정권 따라 오락가락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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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래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인간은 ‘완벽한’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의사결정할 때 어림짐작(heuristics)이나 직관에 의지하는데, 이런 방식은 효율성은 매우 높지만 오류(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편향은 진화의 산물이라지만, 바람직한 미래 전망은 구조적 인지 편향을 최대한 줄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먼저, 미래 어젠다 선정에 어떤 편향이 있을 수 있는지 보자. 프레임 효과(framing effects)라는 것이 있다. 내용의 중요성보다는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따라 대중의 관심이나 논의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얼마나 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망을 방지할 수 있는가’로 프레임을 바꾸면 위험성이 큰 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에너지 전환을 단순히 친원전과 탈원전으로 나누는 순간 미래세대는 빠지고 현세대 간 투쟁과 지대추구로 끝날 수 있다.

정부는 중요성과 시급성보다는 일반 국민에게 더 어필하는 이슈를 먼저 선택하기가 쉽다. 이 순간 각 부처는 구조적 이슈보다는 무엇이 되든지 간에 쉬운 해법에 몰두한다. 반도체 문제의 핵심은 중국의 성장에 따라 지금까지의 산업구조가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세제 혜택 규모가 커지고 대학에 전문 과정이 생기고 연구개발예산이 증가한다. 이렇게 쉬운 문제였다면 이 문제는 오래전에 해결됐을 것이다. 도대체 다른 소는 누가 키우란 말인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증거 해석이나 대안 발굴 시 기존 관점과 유사한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것과 상충되는 정보에 대한 비판적 분석 능력은 잃게 되고 부족주의화 된다. 새로운 변화를 이해하고 학습하기보다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만나면서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자위한다. 세상은 바뀌는데 누가 미래세대를 대변할 수 있을까?

둘째, 문제 대안 도출 과정에서 집단역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자. 해결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집단 논의가 중요하지만 실제 열린 방식의 토론은 생각보다 어렵다. 개인 차원에서 옳지 않다고 생각할 때에도 스스로 검열하고, 집단 다수의 견해에 순응하는 집단 강화(group reinforcement)의 늪에 빠지기 쉽다. 각 대안에 대한 충분한 반론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고 오히려 집단 토론을 통해 기존의 입장을 더 강화하기도 한다. 그 결과 극단적 정책이 채택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이 방식은 결국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제 식구 감싸기와 무리한 의제 맞추기, 부정행위 등으로 국회, 정부, 연구기관, 종교단체, 시민단체, 언론 등 그 어느 조직 하나 과거의 신뢰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없다. 한국사회가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마지막으로 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편향을 살펴보자. 정책결정자들은 일반 국민의 수용성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유사성 환상(illusion of similarity)에 빠지기 쉽다. 새로운 정책마다 일반 국민이 동의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같은 편만 보는 정책으로는 미래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정책결정자들은 자신의 능력, 계획의 완성도 및 성공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낙관적 편향(optimism bias)을 보인다. 대부분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경험이 많은 사업가, 이론을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 고위급 관료 중에서 지나치게 자신감을 갖는 경향이 있고, 이런 과신 때문에 위험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우린 종종 목격한다. 그 이면에는 상황통제에 대한 환상이 있다.

미래에 대한 논의는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요하지만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 공감대가 없는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다시 반대쪽에 가 있기 마련이다. 편향을 극복하지 못한 정책은 결국엔 말썽이 난다. 개방적인 접근을 통해 편향의 원인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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