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난방 대란과 모자 쓴 스크루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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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30면

김창우 사회 에디터

김창우 사회 에디터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바깥 날씨도 매섭지만 급등한 에너지 가격 탓인지 부실한 난방에 썰렁해진 실내 기온에 몸은 더 움츠러든다. 예년보다 20만원 가까이 늘어난 관리비 고지서를 받아드니 마음마저 싸늘하다.

추운 겨울의 이유를 따져 보면 가깝게는 지난해에만 38.5% 오른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이 문제고, 멀리 보면 국제 가스 가격 급등이 원흉이다. 액화천연가스(LNG)는 네덜란드 TTF 현물가격 기준으로 2020년 봄까지 100만Btu(열량 단위, 1Btu는 25만㎉)당 2달러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 말에는 27달러까지 급등했고, 지난해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다시 한번 급등해 지난해 9월에는 69.3달러를 찍었다. 최근 35달러까지 내려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정부 여당은 요금 인상을 미뤘던 전 정부에 화살을 돌린다.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지난해 주택용 가스요금은 2021년 대비 미국 3.3배, 영국 2.6배, 독일 3.6배 각각 인상했는데 우리는 최근 몇 년간 대응이 늦었다”며 “우리나라 가스요금은 이들 국가의 23~60% 정도로 아직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 에너지 포퓰리즘의 폭탄을 지금 정부와 서민이 그대로 뒤집어쓰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예상됐던 일인데 현 정부에서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고 남 탓만 한다”고 반박했다.

당장 춥다고 14만원씩 나눠주면
남는 건 언젠가 갚아야 할 빚더미뿐

하지만 이런 ‘네 탓 공방’은 따뜻한 겨울나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에너지바우처 지급액과 가스요금 할인 폭을 두 배 늘리기로 했다. 겨우내 쓰는 에너지바우처 지원금액은 15만원에서 30만원이 된다. 가스요금 할인액도 현행 월 9000~3만6000원에서 두 배가 된다. 지원이 대폭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액을 따져 보면 겨울을 나기에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중산층의 부담을 두고 볼 것인지는 더 골치 아픈 문제다. 민주당은 7조2000억원의 에너지 물가 지원금 지급과 포괄적인 민생 회복을 위해 30조원 규모의 추경을 제안했다. 7조원이면 시민 1명당 14만원, 30조원이면 60만원씩 돌아간다. 돈을 풀면 당장은 모두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할까. 이재명 대표는 이익이 급등한 에너지 관련 기업에 ‘횡재세’ 개념의 부담금을 물리자고 한다. 영국이 에너지 기업의 세율을 10%포인트 한시적으로 올리기로 했고, 유럽연합(EU)도 연대기여금 명목의 횡재세를 걷기로 했다. 손실이 날 때는 국가가 보전줘야 하느냐, 추가 과세로 공급이 줄면 오히려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민주당은 추가 국채 발행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정부 여당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지만,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유명하다 못해 진부해 보이기까지 하는 경구다. 그만큼 진실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는 요금을 올리는 대신 빚을 내 해결했다. 그 결과 2017년 660조원이던 정부 부채는 지난해 1068조원까지 늘었다. 최근 3.5% 수준인 국고채 금리를 고려하면 이자만 매년 40조원씩 지출해야 할 판이다. 계속 빚을 내서 다음 세대에 상환 책임을 미루거나 세금을 올려서 갚아야 한다.

결국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자는 하나 마나 한 결론밖에 없나. 마음이 허하니 어깨가 더 시리다. 별수 있나. 극혐하던 내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플리스 점퍼라도 걸칠 수밖에. 이불을 두 겹으로 덮고, 살짝 부족한 머리카락을 대신할 비니를 쓰고 잠자리에 든다. 영화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두꺼운 가운에 깔때기 모자를 쓴 스크루지 영감을 보고 ‘역시 수전노답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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