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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구들장 뜨겁게 달궈주던 연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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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31면

‘연탄 배달부’, 서울 중림동, 1979년. ⓒ김녕만

‘연탄 배달부’, 서울 중림동, 1979년. ⓒ김녕만

김장을 마치고 연탄 100장을 쌓아 놓으면 서민의 겨울은 흡족했다. 이 집 저 집 연탄 나르는 아저씨들의 거친 숨소리와 활기찬 발소리에 달동네의 추위도 그때만큼은 잠시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러나 50장 100장씩 한꺼번에 연탄을 들여놓지 못하는 가난한 집에선 식구들이 들며 날며 낱개로 연탄을 사기도 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 한겨울 서민의 생활에서 연탄은 가장 긴요한 생필품이었다. 한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쌀과 김치와 연탄만 풍족하면 그 이상 어머니들의 근심은 사치였다.

영하의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던 연탄 배달 아저씨. 그들은 자신의 키보다 높은 등짐을 지고 행여 한 장이라도 떨어뜨릴세라 조심조심 계단을 오르내리곤 했다. 이 사진을 찍은 1979년 중림동은 아직 개발의 바람이 불지 않던 시절,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이웃끼리 다닥다닥 붙어 살던 정겨운 동네였다. 사진에서처럼 햇빛이 명암을 뚜렷하게 만드는 이쪽 달동네와 남산 아래 빌딩 숲으로 변해 가는 도심 사이는 사뭇 아슴푸레하고 멀다.

추억이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집집마다 연탄을 때던 그 시절 사회면 뉴스에서 ‘연탄가스로 일가족 사망’이란 기사를 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허술한 서민의 단칸방에서 자주 일어나던 안타까운 사고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서민의 애환이 담긴 연탄이 점차 석유와 도시가스에 밀려 사라진 지금, 연탄의 추억은 시인의 시로 남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추궁은 시대를 넘어 겨울바람처럼 매섭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하얗고 푸석푸석해지도록 제 몸을 온전히 태운 후 재가 된 연탄을 괜한 심심풀이로 이리저리 차 버렸던 오래전 과오에 뜨끔했다. 아니다. 실은 타인을 따뜻하게 배려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들킨 기분이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직도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겨울의 한복판이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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