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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처럼 초록 산책길 걷고 아욱국 먹고, 힐링이 절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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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24면

강진으로 떠나는 겨울 여행

붉은 동백꽃이 돌담과 잘 어울린 ‘백운동 원림’ 초입. 김상선 기자

붉은 동백꽃이 돌담과 잘 어울린 ‘백운동 원림’ 초입. 김상선 기자

한 해를 새로 시작한다는 설렘의 유통기한은 짧다. 음력 설까지 쇤 2월이면 뭔가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우울하고 초조해진다. 이럴 때는 새로운 풍경에 마음을 뺏기는 여행이 약이다. 한겨울에도 대나무와 차밭이 어우러진 초록빛 산책길이 있고, 남도 별미로 기운까지 챙길 수 있는 전남 강진으로 우아한 여행을 떠나보자. 2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강진청자축제’도 열린다.

내달 23일부터 청자축제도 열려

한쪽 벽 통창으로 월출산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이한영차문화원’ 한옥 공간. 김상선 기자

한쪽 벽 통창으로 월출산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이한영차문화원’ 한옥 공간. 김상선 기자

월출산과 강진만을 낀 남도의 끝 강진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유명해서 발길 닿는 곳마다 다산과 얽힌 이야기가 가득하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 ‘백운동 원림’ 역시 다산과 인연이 깊다. 조선 중기에 처사 이담로가 조성한 별서로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백운동 계곡을 중심으로 한 3300평의 내원과 외원은 자연과 인공의 적절한 조화로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다. 1812년 다산 또한 제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그 빼어난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승경(옥판봉·산다경·백매오·홍옥폭·유상곡수·창하벽·정유강·모란체·취미선방·풍단·정선대·운당원)을 꼽아 시문을 남겼으니 그게 바로 ‘백운첩’이다.

다산이 꼽은 백운동 원림 12승경 중 ‘운당원’. 별서 뒤편으로 늠름하고 빼곡하게 펼쳐진 왕대나무 숲길이다. 김상선 기자

다산이 꼽은 백운동 원림 12승경 중 ‘운당원’. 별서 뒤편으로 늠름하고 빼곡하게 펼쳐진 왕대나무 숲길이다. 김상선 기자

지금도 다산처럼 산책하는 게 가능하다. 월출산 구정봉 서남쪽 봉우리(옥판봉)를 올려다보며 모란 화단(모란체), 단풍나무숲(풍단), 용비늘처럼 생긴 소나무(정유강), 신선이 머물렀다는 정자(정선대)를 지나면 물길에 잔을 띄워 술을 마시고 시를 짓던(유상곡수) 조선 선비들의 풍류문화까지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대나무와 야생 차나무가 어우러진 길(운당원)에선 그 호젓함에 절로 사색에 빠지게 된다. 원림 초입 동백나무숲(산다경)에선 한겨울 철없이 피어난 동백꽃 몇 송이가 반겨주니 요즘 말로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한 곳이다.

자연과 벗하며 산책하기 좋은 길로는 가우도의 ‘함께해(海) 길’도 있다. 강진만 앞에 펼쳐진 8개의 섬 중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 둘레길을 따라 2.5㎞를 걷는 생태탐방로다. 나무 데크를 깔아놓은 길은 걷기도 편하고, 잔잔한 바다가 길동무가 돼 주니 잠시나마 고민거리를 잊기에 좋다. 그러다 맘이 동하면 가우도 정상 25m 높이에서 강진만 바다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짚트랙(공중하강체험 시설)도 탈 수 있다.

20만평 갈대군락지와 갯벌 위로 산 책길을 낸 ‘강진만생태공원’. 김상선 기자

20만평 갈대군락지와 갯벌 위로 산 책길을 낸 ‘강진만생태공원’. 김상선 기자

바다와 길동무하는 산책길에는 ‘강진만생태공원’도 있다. 탐진강 하구와 강진천이 만나는 강진만은 1,131종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20만평 갈대군락지에 4.16㎞의 생태관찰 데크길을 조성해 놓았다. 갈대의 향연과 더불어 천연기념물인 큰고니, 청정갯벌에서만 볼 수 있는 짱뚱어·수달 등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숲은 사진 찍기에 최적의 장소다.

가우도 ‘함께해(海)길’ 걷기에 좋아

다산이 좋아했다는 시원하고 담백한 ‘아욱국’.

다산이 좋아했다는 시원하고 담백한 ‘아욱국’.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은 ‘맛의 1번지’로도 자부심이 크다. 그 첫 번째 맛인 ‘아욱국’ 역시 다산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 와 초당으로 옮기기 전까지 4년간 머물렀던 ‘사의재’ 옆 작은 식당의 특별메뉴가 바로 아욱국이다. 다산의 싯구에 ‘집 앞 남새밭의 이슬 젖은 아욱을 아침에 꺾고, 동쪽 골짜기의 누런 기장을 밤에 찧는다’라는 구절이 있을 만큼 다산은 아욱국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된장으로 아욱을 무쳐 끓인 국은 담백하고 향기롭다. 백반에 따라 나오는 남도 특유의 반찬들 또한 별미다. ‘강진의 맛’을 대표하는 묵은지와 감태지가 입맛을 돋운다. “그 포오란 것 알고나 드시오.” 사장님의 말에 부리나케 입에 넣은 반찬은 냉이무침. 눈밭에서 캔 겨울 냉이는 단맛이 강해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12가지 한약재를 우린 물에 닭·문어·전복 등의 재료를 넣고 푹 고아 먹는 ‘회춘탕’.

12가지 한약재를 우린 물에 닭·문어·전복 등의 재료를 넣고 푹 고아 먹는 ‘회춘탕’.

저녁 식사로는 ‘다시 젊어진다’는 뜻의 ‘회춘탕’이 제격이다. 가시오가피·당귀·헛개나무·뽕나무·엄나무 등 12가지 한약재로 육수를 만들고 토종닭(또는 오리)·문어·전복에 밤·대추까지, 육·해·공 재료들로 꽉 채운 별미다.

입이 떡 벌어지도록 풍성한 냄비를 마주하면 통통한 문어 다리부터 씹어볼까, 폭신한 닭다리에 묵은지를 얹어볼까 고민이 앞선다. 원래는 마량항 주변에 전해오던 향토음식인데 강진군청이 제조방법과 조리법을 체계화해서 특허 등록한 후 2013년부터 명품 브랜드로 육성하고 있다. 때문에 군 내에 ‘회춘탕 인증업소’가 따로 있다. 식당마다 기본 레시피는 같지만 저마다 독특한 손맛을 얹기에 먹는 재미는 다 다르다. 예를 들어 ‘하나로 식당’에선 마지막 남은 국물에 떡국을 끓여주는데 각종 재료가 푹 우러난 국물은 짜지 않고 고소해서 배가 불러도 숟가락을 멈출 수 없다.

장어보다 스태미나에 좋다는 ‘짱뚱어탕’.

장어보다 스태미나에 좋다는 ‘짱뚱어탕’.

강진의 또 다른 별미로 ‘짱뚱어탕’을 빼놓을 수 없다. 생선을 뼈째 갈아 된장을 풀고 늙은 호박, 시래기와 함께 끓여낸 음식인데 맛이 묘하다. 된장만 넣었다는데 국물 색은 붉고, 밥알과 엉기는 맛은 칼칼하면서도 간간하다. ‘강진만갯벌탕’ 식당 사장 이순임(74)씨는 “할머니의 할머니가 만들던 손맛 그대로 고춧가루는 쓰지 않고 물에 불린 통고추를 갈아 쓴다”며 “재료는 같아도 선수들만 아는 비율이 중요한데 내 손과 눈이 바로 저울”이라고 했다.

짱뚱어는 갯벌 위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기 때문에 오염된 곳에선 살 수 없다. 양식도 되지 않아 100% 자연산인데, 갯벌에서 일일이 낚싯바늘로 잡아채야 한다. 올해로 짱뚱어잡이 60년째라는 이씨는 “단백질 함량이 쇠고기보다 많아 기운 차리게 하는 음식으로 으뜸”이라며 “장어가 스태미나에 좋다고들 하지만 짱뚱어 앉았던 자리에 장어는 가지도 못한다”고 했다. 메뉴는 전골·회·튀김·구이 등 다양한데 뼈부터 머리까지 몽땅 갈아먹는 탕이 으뜸이란다. “탕 한 그릇에 밥을 다 말지 말고, 세 숟가락씩 말아 먹어야 가장 맛있는 갯벌탕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이씨의 조언이다.

홍어삼합·육회 등으로 풍성하게 차려지는 남도 한정식.

홍어삼합·육회 등으로 풍성하게 차려지는 남도 한정식.

강진에서 하룻밤은 한옥체험을 추천한다. 월남리에 있는 ‘이한영차문화원’은 현대식 카페 ‘백운차실’과 월출산을 통창으로 바라보며 힐링할 수 있는 한옥 공간을 갖추고 있다. 월출산의 야생 찻잎으로 잎차와 덩어리차를 만드는 곳으로, 한국 최초의 상업화된 차 브랜드 ‘백운옥판차’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다산 선생과의 약속을 5대째 지키며 한국의 차 문화를 지켜온 한 가문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사의재에 이웃한 ‘사의재 한옥체험관’은 최근 의류 브랜드 ‘에피그램’과 함께 리모델링을 해 편리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2017년도부터 청송·하동·고창 등 우리나라 아름다운 소도시에서 ‘살아보기’를 진행해온 에피그램의 ‘올모스트홈 스테이’ 프로젝트는 한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지역의 가치와 멋을 경험케 하고자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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