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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는 벗지만…팬데믹이 드리운 그늘 ‘파편사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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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03면

코로나 3년이 남긴 것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한지 3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 속에서 영상회의와 재택근무가 익숙해졌고, 배달을 통한 소비는 증가했다. [뉴스1]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한지 3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 속에서 영상회의와 재택근무가 익숙해졌고, 배달을 통한 소비는 증가했다. [뉴스1]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다. 미착용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한지 2년 3개월 만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것은 만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7차례의 유행이 있었고, 온 국민과 의료진 및 방역당국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투를 벌였다. 이 기간 동안 팬데믹은 우리의 삶과 일상을 어떻게 바꿨을까.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27일 “일상을 회복해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긴 힘들다”고 말했다. 과거 스페인 독감처럼 한 번 꺾인 문명의 흐름은 좀처럼 돌려놓기 어려워서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자체만이 아니라 팬데믹에 대응하며 일어난 변화들이 인간의 삶을 크게 바꿔 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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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소비·고용 행태가 달라졌다. 온라인 비즈니스가 급성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배달음식의 증대가 눈에 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5조2628억 원이었던 온라인 음식서비스 매출액은 2021년 25조6783억 원으로 급증했다. 배달 노동자 수도 2019~2021년 34만 명에서 42만 명으로 늘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는 ‘무인화’ 바람이 거셌다. 요식업계에서는 프랜차이즈부터 영세업장까지 경쟁적으로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무인 편의점·카페 등도 대거 등장했다. 지난 26일 KB국민카드가 2019~2022년 소비 트렌드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셀프사진관의 매출액이 1년 새 271%, 코인노래방은 115% 증가했다.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한지 3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 속에서 영상회의와 재택근무가 익숙해졌고, 배달을 통한 소비는 증가했다. [사진 LG에너지솔루션]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한지 3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 속에서 영상회의와 재택근무가 익숙해졌고, 배달을 통한 소비는 증가했다. [사진 LG에너지솔루션]

일반 기업에서는 원격 근무가 표준으로 자리 잡으며 일의 성격과 처리 방식을 크게 바꿔 놨다. 재택근무의 활성화로 화상회의·메신저 앱과 같은 기술이 보편화 됐으며, 업무의 상당 부분이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미네르바스쿨처럼 온라인 플랫폼이 핵심인 교육방식이 크게 확산됐다. 비대면은 직장·학교 등의 문화도 크게 바꿔 놓았다. 사무실 근무가 다시 활성화되자 재택근무 하는 곳으로 이직하는 현상이 늘었다. 기업들도 근무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유연근로제를 내놓기 시작했다. 학교에선 온라인 교육으로 촉발된 에듀테크가 디지털 교과서 상용화, 인공지능 교사 도입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한지 3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 속에서 영상회의와 재택근무가 익숙해졌고, 배달을 통한 소비는 증가했다. [뉴시스]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한지 3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 속에서 영상회의와 재택근무가 익숙해졌고, 배달을 통한 소비는 증가했다. [뉴시스]

이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변화는 매우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제롬 파월 의장은 “팬데믹이 가져온 경제 변화는 영구적”이라며 “전염병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 많은 원격근무, 새로운 기술과 일자리가 생겨나며 대면 서비스는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변화들은 문명사적 측면에서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팬데믹 이후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파편화’다. 파편화는 국가나 개인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온 시스템을 벗어나 각자도생의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을 뜻한다. 지난 16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제도 ‘파편화된 세계에서의 협력’이었다. WEF는 공식 사이트에서 “세계가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트리거(방아쇠)로 중요한 변곡점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도 “세계·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WEF는 국가적 차원에서 세계화를 약화시키는 블록화 현상을 좀 더 우려하고 있지만, 각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코로나19로 파편화된 세상이 인간의 고립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집중해서 보게 된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기술들이 사회적 관계의 피상성을 높여 개인들을 더욱 분절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도는 34.1%로 처음 조사가 시작된 2009년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불안장애 환자 수는 코로나19 시작 직전인 2019년 74만 명에서 2021년 87만 명으로 급증했다. 젊을수록 비대면 환경에 익숙해져 대면을 꺼려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심지어 전화 통화조차 두려워하는 ‘콜포비아’까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알바천국이 MZ세대 2735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9.9%가 ‘콜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답변했다. ‘콜포비아’ 극복을 위해 시간당 10만 원짜리 과외가 성행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한지 3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 속에서 영상회의와 재택근무가 익숙해졌고, 배달을 통한 소비는 증가했다. [뉴스1]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한지 3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 속에서 영상회의와 재택근무가 익숙해졌고, 배달을 통한 소비는 증가했다. [뉴스1]

SNS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파편화 현상은 더욱 크게 나타난다. 기술은 초연결로 상태로 가속화하고 있지만, 개인은 더욱 고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알고리즘 탓에 확증편향은 계속 커지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의 소통 기회는 점점 줄고 있다. 관계의 파편화는 청년들의 연애·결혼, 나아가 저출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2019년 30만 명이었던 출생아 수는 2021년 26만 명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25만 명대로 추정된다. 이는 신혼부부가 2021년 역대 처음으로 20만 쌍 아래로 내려간 탓이 크다. 2011년 33만 건에 달했던 혼인 건수는 2021년 19만 건으로 급락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상황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연세대 ‘2021 성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성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밝힌 19~29세 남성 비율(42%)이 60대(29%)보다 높았다. 젠더갈등까지 더해져 젊은 남녀가 결혼은커녕 연애까지 기피하면서 인구소멸의 시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인류문명은 울리히 벡이 말했던 ‘위험사회’가 심화되는 과정이다. 애초 팬데믹은 교통의 발전과 인구집중화가 낳은 문명의 재난이며, 이에 대응하며 이뤄진 급격한 기술발전과 인간의 파편화는 우리가 자초한 위험이다. 급진적 사회변동에 따른 갈등과 혼란은 팬데믹의 종식과 함께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는다. ‘파편사회’ 극복을 위한 국가와 사회, 시민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그마나 다행인 점은 팬데믹으로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점이다. “14세기 영국의 흑사병 사망률은 50%였지만 부자들은 훨씬 낮았다”(『작은 전염병』)는 프랭크 펠딩거의 지적처럼 똑같은 재난에도 계층에 따라 경험하는 위기의 경중은 달랐다. 약해진 사회안전망을 재점검하고 고립된 개인이 다시 연대로 나아설 수 있는 고민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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