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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험 과대 해석 말라, 올 하반기 이후 개선될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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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4호 02면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

위기를 경계하되, 균형잡힌 시각이 중요하다. 이종렬 부총재보는 “현재의 위험은 올바른 정책대응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김상선 기자

위기를 경계하되, 균형잡힌 시각이 중요하다. 이종렬 부총재보는 “현재의 위험은 올바른 정책대응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김상선 기자

“우리가 경제 상황에 대한 지나친 우려로 지레 위축될 경우 오히려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 지난 3일 범금융 신년인사회)

“지방간이나 위염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중병에 걸릴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방안에 누워있기보다는 식습관을 고치고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대처법이다. 과도하게 위축되거나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 지난 9일 한은 블로그)

최근 한국은행 고위급 인사들이 경제 상황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경계하는 메시지를 연이어 내놨다. 위험을 과대 해석해 불안에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부총재보는 지난해 12월 한은이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바탕으로 ▶현재 금융시스템 상황 ▶가계 채무상환 능력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험성에 대해 아직 위기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한은 부총재보급 인사가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가 담긴 글을 직접 한은 공식 블로그에 올린 것은 처음이다. 이 부총재보는 금융안정보고서를 작성하는 금융안정국 등을 총괄하고 있다.

차주 DSR, 코로나 이전 수준 밑돌아

올해 경제 전망은 어느 때보다 암울하다. 전세계적으로 긴축 기조가 이어지며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단기 금융시장이 불안해졌고, 고질적인 가계부채와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부동산 관련 부실 문제도 직면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로 낮췄다. 한은 보고서에서도 금융시스템 리스크 불안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발표한 ‘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2022년 하반기 시스템 리스크 평가’ 결과에 따르면, 단기(1년 이내) 시계에서 시스템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한 비중이 58.3%에 달했다. 2012년 시스템 리스크 평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한은이 바라보는 우리 경제의 위험 수준은 어떨까.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바탕은 무엇일까.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를 인터뷰했다.

대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운데도 ‘위축되지 말자’는 메시지를 직접 올린 이유는.
“지난해 12월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금융안정 상황을 평가하고 그 취약성과 리스크에 대한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리스크 요인이 부각되면서 잠재위험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금융안정 상황을 균형감 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더 자세한 설명을 담은 글을 올리게 됐다.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우리의 대응능력을 과소평가해 위험을 증폭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장 참가자의 불안이 과도하게 커지면 오히려 자기실현적 손실로 이어져 불안이 더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세간의 반응이 엇갈린다. 대체로 경제 위기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에는 수긍하면서도 “얼마나 경기가 안좋으면, 한은이 연일 위축되지 말자고 강조하냐”는 시선부터 “감당하기 힘든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아직도 한은이 갈팡질팡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은의 상황 인식이 다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위기 발생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 아닌가.
“2022년 하반기 이후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주요국 정책금리가 빠르게 인상되는 가운데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우발적인 신용사건이 더해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영향이 반영되면서 금융불안지수(FSI) 지표가 위기단계(22) 수준까지 빠르게 높아졌다. FSI는 한은이 금융안정 상황을 가늠해보는 지표로, 단기적 시계에서 가격변수의 변동성과 신용스프레드, 심리지수 등 금융시스템의 불안 상황을 보여준다. 다만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당시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었고, 이후 정부와 한은의 적극적인 시장안정화 조치에 힘입어 지난해 11월 이후 FSI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 진정되는 양상이다. 또한 금융시스템에 내재된 중장기적 취약성을 나타내는 금융취약성지수(FVI)도 장기평균 수준으로 점차 수렴해 가고 있다. 금리상승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FSI가 상승할 수 있겠으나, 중장기적으로 대내외 부정적 충격이 금융부문 취약성을 통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영향이 줄어들면서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지고 있다고 본다.”
올해 경제 전망이 어둡다.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지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다시 말하자면 단기(1년 이내)로는 어려울 수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안정적으로 바라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차원이다. 여기에서 ‘단기’는 올해다. 개인적으로 2023년, 아니 올 상반기가 제일 어려운 시기일 수 있다고 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 부총재보는 가계채무와 부동산 경착륙 우려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특히 이 부총재보는 지난해 3분기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차주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60.6%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인 2015년~2018년(62~63%)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금융 불안 뇌관으로 떠오른 부동산 PF도 대출 일부가 부실화되더라도 우리 금융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한은이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통해 부동산 경기 부진이 단기에 그칠 경우(주택가격 15% 하락, 부진 기간 1년) 금융기관 전반 자본비율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부동산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경우(주택가격 30% 하락, 부진기간 3년)에는 금융기관 자본비율이 상당폭 하락할 수 있지만, 이는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해 전국 주택 가격이 실거래 기준 15% 하락했다. 3년간 30% 하락도 올 수 있지 않나.
“한은이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주택가격이 30% 하락하고 그 기간도 3년 이상 장기화하는 경우’라고 말한 시점은 2022년 9월 말 기준이다. 여기서 추가로 30% 하락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다. 금융기관의 양호한 건전성과 최근 정부의 연착륙 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주택시장 부진이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본다.”
‘숨겨진 연체’에 대한 우려가 크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최근 들어 대내외 여건이 안 좋아지면서 상승 전환했다. 그러나 2022년 9월 말 기준 금융권 가계대출 연체율은 0.6%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2009년 3월말 2.3%) 수준을 크게 하회하고 있다. 대내외 충격에 대한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 전반의 건전성은 여전히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부의 금융지원정책이 지속함에 따라 자영업자 대출을 중심으로 연체 발생이 아직 표면화되지 않은 측면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들도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자본확충 등을 통해 손실 흡수능력을 높여가야 한다.”

지난 1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3.5%로 인상한 직후, 이창용 총재는 향후 금리 동결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금통위 직후 시장에선 앞으로 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JP모건과 씨티 등은 현 수준인 3.5%에서 금리 인상이 종료될 것으로 예상했다. 금리 수준을 선반영하는 국고채 금리도 떨어졌다.

컨틴전시 플랜 준비해 신속 조치

한은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시장은 사실상 동결로 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금리가 급상승할 때는 어디가 고점인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컸다면, 지난번에 기준금리 3.5% 또는 3.75% 가능성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금리 인상의 끝이 보이는구나 하고, 거기에 맞춰 시장이 반응하는 것이라고 본다. 1월 금통위에서 이창용 총재는 “현시점에서는 시기상조이나 물가가 중장기적으로 정책 목표 수준으로 확실히 수렴해 간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때 가서 금리 인하에 관해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기대인플레이션이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물가가 잡히지 않는다면, 금리 동결이나 금리 인하는 예단하기 어렵다.”
금리 인상이 3.5~3.75%로 종료될 경우 한·미 금리차에 따른 리스크는.
“지난해 하반기 우리 경제를 돌아볼 때, 한·미 간 정책금리 격차가 자본유출입 등에 기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국내외 경제 및 금융시장 여건 등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줬다. 따라서 금리 격차에 대해 유의해서 지켜봐야 하겠지만, ‘얼마 이상이면 위험하다’는 식으로 단정해 부정적 영향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현재 위험은 “올바른 정책 대응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근거가 무엇인가.
“위험에 대비한 대응 방안, 소위 컨틴전시 플랜을 준비하고 각 위기 진행단계에 맞는 조치를 신속히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해 레고랜드발 단기 자금시장(PF ABCP)  불안에 대응해 한은과 정부는 정책 공조를 통해 시장안정화 조치를 전격 시행하고, 상황에 따라 대응조치 수준을 조절해 나갔다. 가계부채 및 부동산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중장기적인 대응방안 마련을 강구하고 있다. 부동산과 연계돼 누증된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를 위해 DSR 등 소득기반 대출원칙을 정착해 나가는 한편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 개선에도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은은 정부와 함께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고민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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