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도쿄 도심에는 신축 집이 없어요. 집 구하는 사람들은 많고요. 그러다 보니 집이 하나 나오면 경쟁이 심하답니다.”
일본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의 한 부동산 회사 관계자는 27일 일본 부동산 시장이 최근 몇 년 새 달라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변화의 중심은 도쿄를 중심으로 한 도심의 신축 맨션. 한국으로 치면 아파트와 같은 이 신축 맨션 가격이 무서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가 지난 26일 발표한 도쿄 23구의 맨션 평균 가격은 8236만엔(약 7억8200만원). 코로나19 전인 2019년(7286만엔)보다 1000만엔가량 올랐다. 도쿄 집값이 오른 것은 2년 연속. 일본 언론들은 집값이 폭등했던 1980년대 후반의 ‘버블기’를 넘어서는 사상 최고치라고 전했다.
코로나 지나며 오르는 집값, 임대도 올라

일본 도쿄 도심 풍경. 김현예 기자
집값 오름세에 고가의 집을 뜻하는 ‘억션’이란 말도 재등장했다. 억션은 1억엔(약 9억6000만원)과 맨션의 합성어로, 버블이 꺼지면서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수도권에 판매된 신축 맨션 2만9569채 가운데 약 8%(2491채)가 1억엔을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신규 분양도 1억엔을 넘기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미쓰이 부동산이 도쿄 미나토구에서 개발 중인 1000세대가 넘는 신규 맨션 단지 역시 분양가가 1억엔 전후로 책정됐다.
일반 주택도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다. 시장조사회사인 도쿄칸테이가 지난 24일 발표한 지난해 중고 맨션(70㎡) 가격 추이에 따르면 도쿄 등 수도권 지역은 전년 대비 13.2%나 집값이 올랐다.
임대 시장 분위기도 비슷하다. 일본 부동산 회사 관계자는 “일 년 전만 해도 신주쿠 지역에서 주차장 포함 한 달에 35만엔(70㎡ 기준)에 계약하던 곳이 이제는 50만엔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잠잠했던 원룸 시장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고이즈미 나오토 일본 고미즈미 부동산 대표는 “최근 매매가 활성화하면서 원룸 거래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파워커플이 주도하는 새집 시장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의 신축 맨션 시장을 ‘파워커플’이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워커플은 소비력 있는 부부를 지칭하는 말로, 미쓰비시종합연구소에 따르면 평균 부부 합산 연봉 1000만엔(약 9500만원)에서 1500만엔(약 1억4200만원)의 재력 있는 가구를 뜻한다. 한 달 소비지출액이 일본 전체 평균의 2.5배에 달하는 이들이 신축 맨션을 선호하면서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설명이다.
도쿄올림픽 선수촌으로 사용되다 대규모 맨션으로 재건축한 ‘하루미 플래그'는 최대 1억엔이 넘는데, 인기가 높아 지난해 약 1200채가 거의 다 팔려나갔다. 요미우리는 “고가 아파트 구매자는 파워커플로 불리는 맞벌이 가구가 중심”이라며 “신용도 높은 부부가 대출을 받으면 대출 가능 금액이 커져 가격이 올라도 대응하기 쉽다”고 전했다.

일본 신주쿠의 주택가 풍경. 코로나를 거치며 일본 주택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김현예 기자
일각에선 “더 오른다” 전망도
도쿄의 집값은 얼마나 더 오르게 될까. 아사히신문은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 전망을 인용해 원자잿값 인상, 엔저로 인한 외국인 투자, 일본 내 신축 주택 공급 부족 등으로 한동안 집값 상승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건설업연합회 추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원자잿값은 약 27% 올랐다. 건설비용도 동반 상승했는데 약 13~16%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건설비용이 오른 데다, 신축 주택의 공급 감소까지 겹치면서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상승 요인은 또 있다. 파워커플과 같은 고소득층, 엔저 효과를 누리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꾸준히 일본 주택시장에 관심을 들이고 있는 점이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JLL 오히가시 유토(大東雄人)는 “코로나 대책 완화로 외국 투자자들의 일본 방문이 늘면서 투자 수요에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다”며 “2023년에도 금리가 낮은 것을 전제로 본다면, 가격 상승 요인으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