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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급식카드, 걸식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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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사회부디렉터

김승현 사회부디렉터

‘불구기형의 ○○을 공중에 관람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1960년대 한국의 어떤 법 조항이다. 빈칸을 채우는 순간 당신의 표정은 일그러질 것이다. 이 조항은 1961년 12월 제정된 아동복리법 15조 1항이다. ○○은 ‘아동’이다. 60여년 전의 한국은, 특히 아이들에게, 야만의 제국이었다. 지금은 ‘불구기형의 아동’이라는 표현조차 용납되지 않건만, 그때는 ‘관람’까지 시켰다. 부랑아, 앵벌이, 구걸 등의 표현이 일상으로 쓰이던 시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녀자의 옷자락을 잡고 구걸하는 꼬마거지, 기지촌 여성과 미군의 성매매를 연결해주는 슈샤인보이가 사회 문제로 거론됐다.

아동복리법 15조가 정한 금지행위를 보면 시대상은 더 적나라해진다. 앞 순위에 아동을 이용한 걸식(2항), 14세 미만에게 곡예를 시키거나(3항) 접객영업을 시키는 행위(4항), 음행을 시키거나 매개시키는 행위(5, 6항) 등이 명시돼 있다. 전쟁 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선 아동을 이용한 어른의 횡포와 착취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아동복지법은 우리 시대 자화상
구걸·학대·접객 등 금지행위 변천
아이들이 선뜻 못 쓰는 급식카드
또 다른 낙인찍기가 되지 말아야

김성진씨는 결식아동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눈치 보면 혼난다”고 적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김성진씨는 결식아동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눈치 보면 혼난다”고 적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아동복리법도 5·16 쿠데타(1961년)의 산물이었다. 느닷없이 아동 보호에 눈을 뜬 게 아니라 ‘사회정화사업’의 일환이었다. 외국에 보여주기 부끄러운 사회 문제를 일단 감추고 보자는 독재자의 체면치레 측면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동복지법으로 이름이 바뀌고 금지행위에도 변화가 있었다. 2000년 개정법은 신체적, 성적, 정서적 학대 금지가 1, 2, 3항으로 올라왔다. 2012년 개정법에서는 아동매매(1항), 음행을 시키거나 음행 매개(2항), 신체 학대(3항) 순으로 바뀌었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아동의 정의는 ‘만 18세 미만의 사람’으로 유지됐지만, 그들이 맞닥뜨리는 공포와 위험은 달라졌다. 앞서 언급한 1961년의 금지행위 1항은 어찌 됐을까. 현행 아동복지법 17조 7항 ‘장애를 가진 아동을 공중에 관람시키는 행위’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복지국가로 자리매김한 지금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조항이다. 한국은 유엔 가입(1991년) 이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면서 30여년 간 아동복지를 폭발적으로 확대해 왔다.

점점 더 두꺼워진 아동복지법은, 그러나, 허점투성이였다. 법과 제도는 늘 사후적이고 섬세하지 못했다. 학대와 성폭행, 인신매매 금지가 금지행위 앞 순위를 차지한 것도 관련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사후약방문, 땜질 입법이 반복됐다. 아이들의 아우성을 먼저 들은 적은 없었다. 아동복지법의 역사를 되돌아본 것도 최근 기사를 통해 결식아동의 실상을 접했기 때문이다.

아동복지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아동의 건강 증진과 체력 향상을 위한 지원’을 의무(35조)로 규정했지만, 가난한 아이들의 마음까지 읽지는 못했다. 가난을 감추고 싶은 사춘기의 심리를 놓쳤다. 한 달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20여만원짜리 선불카드를 줘도 음료수를 사 먹으려면 “이거 사도 되나요”라고 물어야 했다. 급식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 찾는 건 ‘모험’이고, 자신을 향한 싸늘한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기계적으로 계산만 하는 편의점 알바가 ‘급식 천사’로 느껴진 이유다. 방학이면 급식카드의 편의점 사용률은 80%를 웃돌았다.

물가 상승은 한 끼(8000~9000원), 하루(2만~2만7000원) 사용 한도를 지켜야 하는 아이들을 주눅 들게 했다. 부모의 오·남용이 걱정돼 한도를 정했지만, ‘낙인’은 더 선명해졌다. 결식(缺食)을 걸식(乞食)처럼 느끼게 한 ‘디테일의 악마’. 결식아동 이름을 부르며 공짜 식권을 나눠주던 20년 전 무개념 선생님의 그림자가 지금도 어른거렸다. 결식을 걸식으로 발음해 웃음거리가 됐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실수와는 차원이 다른, 시스템의 오류다.

일각에선 한 끼 8000원이 적은 돈이냐고 따진다. 누가 그걸 모르나. 게다가 우리가 낸 세금 아닌가. 그 귀한 돈을 매년 수천억원씩 쓰면서 정작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현실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급식카드에 새긴 꿈(서울)과 드림(경기도)은 누구를 위한 각인인가.

참다못한 일부 자영업자는 결식아동이 카드를 꺼내지도 못하게 공짜로 음식을 제공하며 “눈치 보면 혼난다”는 문구를 붙였다. 초밥집 사장 김성진(33)씨는 “가난한 아이들이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회의원과 공무원은 왜 이런 장삼이사의 생각을 따라잡지 못했을까. 진정 아동을 관람·구걸시키던 60년 전의 나쁜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