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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가 외면한 ‘헤어질 결심’… 멜로 영화여서 불리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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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헤어질 결심'. 사진 CJ ENM

영화 '헤어질 결심'. 사진 CJ ENM

“박찬욱 감독의 낭만적 느와르 영화가 탈락한 건 오늘 아침 가장 놀라운 사건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영어 제목 Decision to Leave)’이 24일(이하 현지 시간) 발표된 올해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 최종 후보에서 탈락하자, 현지 매체 ‘버라이어티’가 보인 반응이다. 한 마디로 이변이라는 것이다.
미 연예매체 ‘배니티페어’는 "아카데미가 박찬욱을 무시했다.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두드러진 감독 중 한 명에게 때늦은 오스카상을 줄 기회마저 놓쳤다"는 평까지 내놓았다.

'헤어질…' 후보불발에 해외선 "아카데미 억지"  

‘헤어질 결심’이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려한 연출'이란 호평과 함께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만 해도, 이게 영예의 끝이 아닐 거란 기대가 컸다. 국내에서 흥행하진 못했지만, 수작이란 평가와 N차 관람 열풍 속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3년 만에 아카데미상을 노릴 만 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 양대 영화상 가운데 하나인 골든글로브와 미국 비평가들이 선정하는 영화상인 크리틱스초이스에서 각각 비영어 작품상과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이 불발되면서 아카데미 수상 전망에 빨간 불이 켜졌다. 그리고 결국 아카데미상은 '헤어질 결심'을 차갑게 외면했다.
'헤어질 결심'은 영국아카데미(BAFTA) 감독상‧외국어영화상 2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아카데미상 후보 불발은 낭보를 기대했던 국내외 영화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 5월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박찬욱 감독(오른쪽)이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는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5월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박찬욱 감독(오른쪽)이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는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상 올해 최종 후보는 ‘아르헨티나, 1985’(아르헨티나) ‘클로즈’(벨기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독일) ‘말 없는 소녀’(아일랜드) ‘EO’(폴란드) 등 5편.
후보 발표 후 버라이어티는 “‘헤어질 결심’ 같은 더 멋지고 지적인 작품 대신 종종 오스카 수상의 직행 티켓으로 통하는 심금을 울리는 어린이 주인공 영화들이 후보에 포함됐다”고 분석했다. 라디오타임스‧인사이더 등 영미권 매체들도 “'헤어질 결심'은 작품상에 오를만한 영화인데 당혹스럽다” “아카데미의 억지” 등 트위터에 쏟아진 해외 팬들의 불만을 전했다.

美영화과 교수 "극장서 압도되는 영환데 온라인 관람"

'헤어질 결심'은 왜 올해 아카데미상의 외면을 받은 것일까. 최근 수상 경향인 역사‧전쟁‧정치 소재 경쟁작들과 달리 남녀 사랑을 다룬 멜로 장르란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홍수경 영화진흥위원회 북미주재원은 “‘헤어질 결심’도 원전‧이민자 등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고 있지만 외연상 로맨틱 스릴러로 보이기 때문에 과소평가됐을 수 있다”며 "평단 주목도가 타 작품에 뒤지지 않는데 후보에 오르지 못한 건 이변"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학의 한 영화과 교수는 “‘헤어질 결심’은 첫 관람에 쉽게 파악되는 작품이 아닌 데다, 극장에서 봐야 압도되는 영화”라면서 "아카데미 투표자들이 온라인 스크리닝으로 후보작을 보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진위 "'기생충' 이후 아카데미, 韓영화 글로벌 입지 영향"

올해 ‘헤어질 결심’의 아카데미 후보 결과에 관심이 쏠린 건 2020년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4관왕을 차지하며 게임체인저로 등극한 영향이 크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에서 2019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 후보에 오른 건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예비후보에 선정된 게 처음이다.
이듬해 ‘기생충’이 한국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하며 판을 흔들어놓았다. 비영어 영화도 아카데미상에서 국제장편영화상 외 부문에 도전할 수 있고, 트로피까지 거머쥘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진 것이다.
지난해 9월 북미 개봉한 ‘헤어질 결심’을 포함해 ‘기생충’ 이후 미국 현지 극장 개봉한 한국영화들이 아카데미 주요 부문에 후보 출품 신청을 하게 된 계기다.

2020년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현장 모습. [AFP]

2020년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현장 모습. [AFP]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달 발간한 〈‘기생충’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 경향과 오스카 캠페인 사례 분석〉 보고서는 “‘기생충’과 ‘미나리’(2021년 배우 윤여정이 한국 최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를 통해 한국 영화와 한국 영화인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지명되면서 아카데미 시상식은 더 이상 영어권 영화 만을 대상으로 한 미국 내 행사가 아니라 한국 영화의 브랜딩과 글로벌 입지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행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라고 분석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2020년 2월 9일(현지시간) 밤 미국 LA 돌비극장. 영화 ‘기생충’ 관계자들이 작품상 수상 축하를 위해 함께 무대에 올랐다. [EPA]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2020년 2월 9일(현지시간) 밤 미국 LA 돌비극장. 영화 ‘기생충’ 관계자들이 작품상 수상 축하를 위해 함께 무대에 올랐다. [EPA]

국내 투자배급사의 한 관계자는 "'헤어질 결심'이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에서 아깝게 탈락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에 낙담하지 말고 한국 영화가 꾸준히 해외 유수 영화제 등에 문을 두드리면, 전세계적으로 K콘텐트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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