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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시속 170㎞로 늦춰야 했다…작지만 위험, 혹한 속 이 물체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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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 제설 작업 모습. 사진 코레일

선로 제설 작업 모습. 사진 코레일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최강 한파가 닥친 지난 24일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 일부 구간에서는 고속열차인 KTX가 평소보다 속도를 많이 늦춰서 운행했습니다.

 통상 시속 280㎞대 안팎으로 달렸다면 이날은 구간과 열차에 따라서 시속 170~230㎞가량으로 주행한 겁니다. 역시 강추위가 맹위를 떨친 25일 오전에도 오송~천안아산 구간에서 일부 고속열차가 감속운행을 했는데요.

 코레일에 따르면 이들 감속운행은 눈과 바람의 영향을 고려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레일과 SR(수서고속철도) 같은 열차운영기관은 이상기후 때 고속철 등 각종 열차운행을 통제하기 위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날씨는 강설(눈)과 강우(비), 강풍(바람), 그리고 폭염(무더위) 등 네 가지입니다. 이 중 요즘 같은 혹한기와 관련이 깊은 항목이 강설과 강풍일 텐데요.

 겨울철, 눈과 바람이 '골칫거리' 

 코레일의 고속철도 운전취급 세칙을 보면 우선 눈이 내리는 경우 레일 면이 눈에 덮여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상황이 되면 시속 30㎞ 이하로 운전하게 돼 있습니다.

 또 하루 적설량이 21㎝ 이상일 때는 시속 130㎞ 이하로 달리고, 일간 적설량이 14㎝ 이상 21㎝ 미만이면 시속 170㎞ 이하로 속도를 낮춰서 주행해야 합니다. 이보다 적설량이 적으면 시속 230㎞ 이하로 운전합니다.

 코레일 관계자는 "눈이 쌓여 얼어붙은 상황에서 열차가 고속으로 달리게 되면 선로 주변의 자갈이 튀어 올라 차체나 유리창을 때려서 파손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속도를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바람은 특히 항공기 운항에 크게 지장을 주지만 열차에도 영향을 미치는데요. 풍속이 초속 45m 이상이 되면 운행을 보류하거나 아예 중지토록 돼 있습니다. 물론 이 정도 강풍이 부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열차 운행에도 지장을 준다. 뉴스1

바람이 세게 불면 열차 운행에도 지장을 준다. 뉴스1

 또 초속 40m 이상 45m 미만인 때는 시속 90㎞ 이하로, 초속 30m 이상 40m 미만이면 시속 170㎞ 이하로 달려야 합니다. 초속 30㎞ 미만일 경우는 풍속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감속해서 운행한다고 하는데요. 참고로 일반열차는 풍속이 초속 30m를 넘으면 열차운행을 일시중지하게 돼 있습니다.

 혹한 땐 선로 연결부 끊어질 수도  

 그런데 관련 규정에는 없지만, 기온이 크게 떨어지게 되면 꽤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선로 용접부와 레일 이음매부, 분기기 등인데요.

 고속선로는 물론 최근에 교체되는 일반선로는 길이 200m 이상의 장대레일을 이은 뒤 연결 부분을 용접해서 하나로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레일 사이 틈이 없이 매끈하게 연결돼 열차가 달릴 때 덜컹거리는 소음이나 충격이 없어져 승차감이 대폭 향상됩니다.

 하지만 틈이 없이 이어지다 보니 날씨에 따라서 레일이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현상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강추위로 인해 금속 재질인 레일이 수축하다 보면 용접부위가 끊어질 우려가 있는 겁니다.

고속철도는 장대레일을 이음매 없이 하나로 연결했다. 연합뉴스

고속철도는 장대레일을 이음매 없이 하나로 연결했다. 연합뉴스

 이 경우 열차 바퀴가 빠지는 등 사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데요. 또 열차의 방향을 바꿔주는 분기기도 혹한 탓에 작동에 문제가 생기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겨울철 혹한기가 되면 코레일 등 철도운영기관에서 선로 용접부와 레일 이음매부, 분기기 등에 대한 안전점검을 강화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반면 폭염이 찾아오는 여름엔 반대로 '장출' 현상이 골치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껏 달궈진 레일이 팽창하면서 휘거나 솟아오르는 걸 말하는데요.

 여름엔 선로 솟는 '장출' 요주의  

 장출은 여름철에 열차 탈선을 일으키는 주범으로도 꼽힙니다. 지난해 7월 대전조차장역에서 SRT(수서고속열차)가 탈선한 것도 장출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폭염 때 레일 온도에 따른 감속 규정을 만들어 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데요. 레일 온도가 섭씨 74도를 넘으면 운행을 중지합니다. 또 섭씨 70도 이상 74도 미만일 때는 시속 70㎞ 이하로 운전해야 합니다.

 또 섭씨 65도 이상 70도 미만이면 시속 170㎞~230㎞ 사이로 달려야만 합니다. 기온이 크게 올라가는 경우 철로에 물을 뿌리는 작업을 하는 것도 레일온도를 낮춰 열차 운행에 지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폭염에 선로가 휘는 장출 현상(붉은 원 안). 연합뉴스

폭염에 선로가 휘는 장출 현상(붉은 원 안). 연합뉴스

 장마철이나 가을 태풍 때 쏟아지는 폭우도 상당히 신경 써야 하는 요소인데요. 연속 강우량이 150㎜ 이상이고 시간당 강우량이 60㎜를 넘으면 열차 운행을 중지해야 합니다.

 특히 고가와 교량 구간은 시간당 강우량이 70㎜ 이상이면 운행을 멈춥니다. 또 많은 비가 갑자기 쏟아지면 선로 주변의 비탈면이 무너지는 사고도 발생하기 때문에 역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감속 등 기상과 관련한 고속열차의 세부 규정은 고속철도 도입 당시 프랑스의 자료를 참고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오랜 시간 TGV(테제베)를 운영하면서 쌓인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규정이라는 설명입니다.

 사실 이상기후는 예측도 쉽지 않지만, 대처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눈이 오는 경우만 해도 제설작업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속도를 낮추면 평소보다 소요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는데요. 모두 안전을 위한 것이니만큼 조금 여유 있는 마음을 갖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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