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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남은 국정원 대공수사권…간첩수사로 존폐 공방 불붙었다

중앙일보

입력

국가정보원 수사권 폐지를 1년 앞두고 국정원의 대공(對共) 수사가 활기를 띠면서 내년 1월 1일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전담하게 되는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인사들이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 침투해 북측으로부터 암호문 형태로 받은 지령을 수행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를 포함,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의 사무실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경남 창원, 전북 전주, 제주 등에서는 진보성향 정당의 지역조직에 침투했단 의심을 받는 지하조직 ‘자주통일 민중전위’ ‘ㅎㄱㅎ’에 대한 수사가 한창이다. 국정원은 이들 역시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나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이적 활동을 했다고 보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당산동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사무실 등 전국 민주노총 산하 전현직 간부의 사무실 10여곳을 동시다발로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수사관들이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사무실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 상자를 차량에 싣는 모습. 뉴스1

국가정보원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당산동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사무실 등 전국 민주노총 산하 전현직 간부의 사무실 10여곳을 동시다발로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이날 수사관들이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사무실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 상자를 차량에 싣는 모습. 뉴스1

 이들 사건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 시절 또는 그 이전부터 상당 기간에 걸쳐 정보 수집과 내사가 이뤄졌다. 이에 국민의힘에선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 국정원이 이들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했다는 주장과 함께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은 재고돼야 마땅하다”(지난 19일,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한해 국정원의 수사권을 복원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던 2020년 12월 국회에서 국정원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2013년), 보위부 직파 간첩 사건(2014년) 등 국정원 주도의 대공 사건들이 줄줄이 법정에서 증거 조작이나 자백 강요에 의한 조작으로 판명난 데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공작이 드러나면서 신뢰도가 추락한 상황을 틈탄 ‘개혁’ 드라이브의 결과였다. 다만, 법 개정 당시 안보수사 공백 우려를 고려해 법 시행을 3년 유예하도록 했다. 그 기간 국정원과 경찰은 국장급·실무급 안보수사협의체를 구성해 정기 협의를 이어왔다. 국정원이 진행하던 대공사건도 원칙적으로 경찰과 합동수사를 벌여왔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2020년 12월 국정원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주요 대공수사에 대한 합동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국정원과 경찰 수사관들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2020년 12월 국정원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주요 대공수사에 대한 합동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국정원과 경찰 수사관들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지난해 12월 전국 56개 경찰서에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안보수사팀을 신설해 수사관 131명을 증원했고, 안보수사 전문인력 121명을 추가 채용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공수사는 경찰도 1945년부터 해 오던 분야”라며 “다만, 국정원이 하던 수사를 경찰이 맡게 되는 상황을 대비해 전문교육센터를 열어 고강도로 교육하고, 안보수사에 전문화된 인력을 만들기 위한 인사관리도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이 그동안 축적해 온 대공수사 역량을 경찰이 3년 만에 흡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부쩍 확산됐다. “경찰은 해외 방첩망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과연 제대로 된 대공 수사가 하루아침에 가능할지 의문”(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지적이다. 주요 대공사건은 해외 첩보망과 연계가 필수인데, 경찰이 전담할 경우 이 같은 연계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다. 야당은 “개정 국정원법상 국정원은 수사권만 사라졌지 내사 단계에서 필요한 정보 수집이나 조사 권한은 보유하고 있다. 경찰과 정보 공유만 잘 이뤄지면 문제 될 게 없다”(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김병기 민주당 의원)고 반박한다. 다만, 야당 일각엔 3년이 충분치 않다면 시행 유예기간을 늘리는 방안은 논의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2020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국정원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020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국정원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실제 국정원은 지난해 1월 안보범죄 관련 정보공유 체계 구축 구상을 밝힌 뒤, 국정원이 대공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면 경찰이 수사 결과를 국정원에 통보하도록 하는 안보범죄정보공유센터(가칭) 입법안을 제안했다가 최근 보완을 이유로 철회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공수사는 수사의 단서가 고소·고발이 아닌 정보라는 측면에서 국정원의 정보역량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경찰의 수사역량과 연결고리만 만들어진다면 세간의 염려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의 의견도 분분하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과거 국정원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바꾼 법인데, 이를 되돌릴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필요한 범위 내에서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를 합법적으로 경찰에 제공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검 차장 출신의 임정혁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이사장은 “그간의 폐해는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라며 “각 기관의 전문성을 따져 각자 잘하는 수사를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간첩 수사는 아무런 성과가 나지 않아도 10여년 가까이 지켜보기만 하는 끈기가 필요한 분야”라며 “승진 경쟁이 치열해 단기성과에 민감한 경찰이 이런 초장기 수사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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