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정신의 바바리맨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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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광운대 교수

진중권 광운대 교수

연초에 국회사무처가 의원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3 굿바이전 인 서울’의 작품을 철거하는 일이 있었다. 참여 작가들과 주관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철거된 작품들은 결국 김어준의 벙커1에 옮겨 전시됐다. 작품들이 수준에 어울리는 공간을 찾은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옮겨 간 전시회의 제목. ‘굿바이 in 서울_망명작가전.’ 이 소식을 전하는 어느 유튜브 채널은 썸네일에 이런 자막을 띄웠다. “국회에서 쫓겨난 굿바이전 시민품으로. 윤 정권 탄압이 거꾸로 시민언론 키운다.” 탄압받는 망명 작가 코스프레를 한 셈인데, 어딘지 영 어색하고 군색하다.

그럴 만도 하다. 철거를 명한 국회 사무총장 이광재씨는 민주당 소속으로 도지사까지 했던 인물이다. 게다가 “국회를 모욕의 목적으로 쓰는 건 옳지 않다.”며 사무총장의 철거조치에 힘을 실어 준 국회의장 역시 민주당 출신이다. 그러니 이게 탄압이라면, 그 주체는 정권이 아니라 민주당인 셈이다.

국회서 철거된 ‘굿바이전 인 서울’
풍자는 없고 수준 낮은 적개심만
민주화 빈자리 채운 증오와 혐오
작가·주관자들의 치부 드러낸 꼴

만화가 박재동이 규탄성명서를 읽는 장면은 한편의 부조리극이었다. 주례를 부탁하러 온 제자를 성추행하고, 수업 중 학생들에게 수시로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인물. 그런 그가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투사 행세를 한다. 그걸 보며 그가 참 낯이 두껍다고 생각했다.

‘처럼회’ 의원들도 목소리를 냈다. “국회사무처는 이 같은 다짐을 무단철거라는 야만적 행위로 짓밟았다. 국회조차 표현의 자유를 용납하지 못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아니, 그렇게도 표현의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는 이들이 버젓이 폭탄으로 언론사를 폭파하는 장면을 그려 내걸 생각을 하는가?

국회사무처의 내규에 따르면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행사(제6조5호)’는 원래 취소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그저 그 작품(?)들이 국회라는 공간에 전시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실제로 그 그림들은 지금 벙커1에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 이상한 작품을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는 법. 거기서 그런 이상한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 한껏 이상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들이야 내심 윤 정권이 탄압해주기를 원하겠지만, 야속하게도 정권에서 탄압을 안 해준다.

“저질스러운 것은 작품이나 작가, 주관한 의원들이 아니라, 바로 주호영 원내대표 같은 예술 문맹 정치인입니다.” 민형배 의원의 발언은 실소를 자아낸다. 예술을 좀 아신다는 의원님이 들으시면 좀 섭섭하시겠지만, 40년 동안 미학 공부한 내가 보기에 저질스러운 것은 작품과 작가, 주관한 의원들이 맞다. 사실을 말하자면 주호영 대표는 그 작품들을 과대평가했다. 그것들을 ‘정치 포스터’라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정치 포스터도 하나의 예술형식이다. 그런데 문제의 작품들은 포스터 수준이 아니라, 남북한이 상대를 비방하기 위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열심히 날려대는 ‘삐라’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을 풍자할 수 있다. 하지만 ‘풍자’로 공감을 자아내는 데에는 고도의 정치적·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작품들은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의 뭘 비판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보이는 것은 오직 특정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 상대 진영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뿐이다. 아마도 대통령 부부를 악마화하고 희화함으로써 대중들 사이에 그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심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그 두 사람을 혐오하는 이들에게는 그 그림들이 카타르시스를 줄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 작품을 보며 외려 작가와 주관자들을 혐오하게 된다.

사실 그 그림들은 대통령 부부보다는 외려 그림을 그린 작가들과 전시를 주관한 의원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옛날 초등학교 화장실벽에 그려진 유치한 낙서 같은 그림들. 그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형편없이 망가진, 민주당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의 정신세계다. 왜 이렇게 됐을까?

민주당을 지탱해온 ‘큰 이야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민주화 서사는 시효를 다했다. 그 공백을 그동안 민주당에서는 ‘자디잔 이야기들’, 예를 들어 김어준류가 생산하는 음모론이나 그쪽 유튜브 매체들이 유포하는 가짜뉴스들로 채워왔다. 그 대부분은 물론 증오와 혐오의 콘텐츠들이다.

전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고 미학적으로도 실패했다. 이번 전시는 혹독한 시절 민중을 위해 붓을 들었던 민중미술의 정신마저 저급한 김어준식 선동정치의 영향권 아래 포섭되었다는 것을, 즉 파국을 맞은 진보 진영의 일반적 운명에서 민중미술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2023 굿바이전’의 작가들이 그 작품들을 통해 전시한 것은 황폐해진 자신들의 정신상태다. 애써 감추어야 할 치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그 전시의 참여자와 주관자들은 길거리에서 코트를  활짝 벌리는 ‘바바리맨’을 닮았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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