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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이재명이 정성호의 고언 경청해야 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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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수사 왜 안 하냐고요? 이재명 지사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고 있지 않습니까. 검찰이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면 수사하자’고 합니다.”

2018년 6월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경기지사)를 뇌물죄 등 혐의로 고발했던 장영하 변호사는 수사에 진척이 없자 분당경찰서를 찾아가 따진 끝에 이런 고백을 들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방송토론회에서 친형을 입원시킨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한 혐의로 재판받아온 이 대표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게 2020년 7월이니, 검경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2년 넘게 ‘간’만 보며 이 대표 재판 결과에 따라 수사를 할지 말지 정하려 한 꼼수를 부린 정황이 짙다. 아니나 다를까. 이 대표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경찰은 계속 수사를 뭉개다 3년이 넘은 2021년 7월 ‘무혐의 불송치’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고발인의 이의 제기로 사건은 종결되지 않고 검찰로 넘어갔다. 하지만 ‘친문’ 박은정 지청장(당시) 산하의 성남지청에서도 수사는 공전을 거듭했다. 이에 반발한 박하영 차장검사가 사표를 내는 등 갈등이 커지자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지시했다. 사건을 이첩받은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9월 의혹의 실체를 인정,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 수사가 지금까지 진행되온 것이다. 즉 이 사건은 단 한 번도 무혐의 처분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 안팎에선 “이미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건”이라는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개인 수사가 ‘정치보복’이란 야당
“사법리스크는 본인이 대응해야”
‘친명 좌장’의 소신 발언 곱씹어야

대장동 의혹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2021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후보 측이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문재인 검찰은 ‘꼬리 자르기’ 수준의 수사에 그쳤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검찰이 제대로 파고들자 친문 김명수 대법원장 산하의 법원조차 이 대표 최측근 정진상·김용의 구속영장을 발부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민주당 안팎에선 ‘윤석열 검찰의 보복 수사’란 주장만 난무한다.

대장동 비리는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지난 9일 경기도 가평군에선 전·현직 공무원 4명이 브로커·지방지 기자의 청탁·압력을 받고 청평호 불법 레저 시설에 축구장보다 넓은 수면 독점권을 준 혐의로 기소됐다. 지자체-업자-브로커-지역 언론이 유착해 사익을 챙긴 형국이 대장동 판박이다. 웬만한 지자체마다 이런 의혹이 비일비재하다니 원조 격인 대장동 의혹을 엄단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토착 정경 비리 천국이 될 것이다.

‘이재명 지키기’용 가짜뉴스와 방탄 추태가 판치는 민주당에서 역설적으로 상식에 부합하는 언행을 하는 이가 ‘친명 좌장’ 정성호 의원이다. 그는 지난 5일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는 내가 당당하니 걱정하지 말고 당은 민생에 집중하라’는 입장을 취하는 게 맞는다”고 말한 데 이어 10일 이 대표의 성남지청 출석 현장에도 동행하지 않았다.

정 의원에게 직접 발언의 진의를 물어봤다. 그는 “난 이재명이 무죄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검찰이 이런 사건 수사했다가 무죄 나온 게 한두개냐. 그러나 (수사와 관련해) 이 대표가 아무 얘기가 없으니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나. 따라서 ‘수사는 내가 대처할 테니 당은 민생에만 충실하라’고 밝히며 의연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 쪽에서 이 발언이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던가”고 질문하니 “그런 일 없었다”고 했다. “친명 좌장이니 수사와 관련해 이 대표와 얘기를 나누지 않나”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난 이 대표와 전혀 얘기 안 한다. 안부 전화나 하는 수준이지, 수사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한다. 그건 당에서 다룰 문제다. 또 이 대표 본인이 (수사에) 전문가라고 하는데, 내가 무슨 얘기를 하겠나. 그리고 날 ‘친명 좌장’이라 부르지 말라. 당에 친명계가 어디 있나. 난 갈라치기에 질색하는 사람이다. 대선 끝나고 이른바 친명이란 의원들과 밥 한번 먹은 적이 없다.”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이 상정되면 어쩔 건가”는 질문에 정 의원은 “의원들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부결’이 당론으로 정해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비밀투표”라며 대표라도 당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일축했다.

정 의원은 통화 말미에 이렇게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국민을 믿고, 사법부를 믿고 의연하게 가면 된다. 대표로서 할 일이 수사 대처만은 아니지 않나. 제1야당 지도자로  할 일을 하면 된다. 재판 결과 무죄가 나오면 대통령 되는 거고, 유죄가 나오면 어려운 것 아니겠나” 이 대표가 곱씹어볼 조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