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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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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나경원 전 의원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불출마하기까지 친윤계가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은 많다. 어떻게든 공천 한 번 다시 받아보겠다고 미어캣처럼 사방을 살피는 초선 의원들을 줄 세워 나경원을 비토하는 연판장을 돌린 일, 나경원에게 정치적 신세를 진 사람들을 앞세워 나경원을 공격한 일은 나경원 본인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일은 공동체의 존속 여부와 직결되는 저출산 문제의 책임자 직함을 갖고 국민의힘 당권에 도전할지를 저울질한 나경원의 잘못이 작아 보이게 만드는 부작용도 초래했다. 당권 경쟁의 틈바구니로 대통령을 직접 잡아당긴 것도 정치적으로 결코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잘못보다 더 나쁜 행동은 공직 인사검증 때 불거진 문제를 선거판으로 끌고 온 일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검증 과정에서 건물 투기 문제가 나왔다는데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것부터 해명하는 게 우선순위가 아니냐”고 적었다. 나경원은 결국 이틀 뒤 “양도세 등을 제하고 1600여만원의 이득을 얻었다. 이게 무슨 투기냐”는 해명 자료를 내야 했다.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솔로몬 재판의 엄마 같은 심정이었다”며 “전당 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뉴스1]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솔로몬 재판의 엄마 같은 심정이었다”며 “전당 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뉴스1]

나경원이 50억원대 상가 건물을 샀다가 판 게 올바른 처신인지는 당연히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정보를 얻게 된 경위다. 나경원이 장관 후보군으로 인사검증을 거쳤다는 건 여권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얘기다. 그런데 지난해 9월 19일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질문서’의 첫 장에는 “답변 내용은 인사검증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개인정보로 보호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당연하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관련한 민감한 정보를 제공했는데 이게 자신의 목을 죄는 엉뚱한 용도로 활용된다면 어떻게 국가를 믿을 수 있겠나.

집권 여당 대표는 공인이기 때문에 인사검증 자료를 활용해도 괜찮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전당대회 때 검증 자료를 제출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안 하지 않나. 만약 인사청문회 수준으로 검증하면 전당대회에 나섰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속출할 것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이번에 ‘당원투표 100%’로 경선 방식을 바꿨다. 지난해 600억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받고도 당원이 아닌 사람은 배제했다. 여당 지도부는 공직이 아니라고 더욱더 굵은 선을 그은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 악용됐던 ‘존안자료’를 떠올리게 한다. 민감한 정보가 그 본연의 목적을 넘어 활용되면 권력자의 무기가 된다. 이런 일은 나경원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했으면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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